[이슈&아이템]야구해설가 하일성-허구연씨 아시아경기 입심대결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01분


야구해설계의 라이벌인 하일성 (오른쪽) 허구연씨가 만나 해설대결 명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전영한기자
야구해설계의 라이벌인 하일성 (오른쪽) 허구연씨가 만나 해설대결 명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전영한기자

‘공인된 라이벌’인 야구해설가 하일성씨(54·KBS 야구해설위원)와 허구연씨(51·MBC)를 지난달 2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만났다.

각 방송사의 사정으로 하 위원은 요즘 한국 프로야구만, 허 위원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만 중계하기 때문에 ‘맞붙을 일’이 없었지만,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격돌할 일이 생겼다. 두 사람은 모두 인터넷을 뒤지고, 일본과 대만의 야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전력을 탐색하며 해설자료를 만들기에 시간이 빠듯하다고 첫 마디를 던졌다.

먼저 “서로의 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하 위원은 “저보다 3년 후배죠. 제가 병상에 있을 때도 꼭 찾아와주고…”라며, 허 위원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분이죠, 허허”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해설스타일을 말해 달라”고 재차 묻자 둘 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대신 자신들의 이야기로 슬쩍 넘어갔다.

“뭐, 시청률을 보면 참고가 되실 거예요. 여태껏 애틀랜타와 시드니올림픽, 방콕아시아경기 등 빅매치 중계에서 우리가 항상 (시청률이) 20∼25% 정도는 나왔습니다. 평균 10% 안팎인 타방송사들에 비하면 더블스코어 정도 되죠.” (하 위원)

“광고가 없는 KBS 1TV와는 시청률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축구처럼 전후반에 한 번만 하프타임이 있는 게 아니고 3시간 동안 8, 9번이나 광고가 나가니까요. 저나 MBC나 시청률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허 위원)

베테랑임에 분명하지만 이들은 요즘도 ‘30대적 버릇 50대 초반까지 간다’는 것을 실감하며 방송에 나서기 전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하 위원은 ‘서울사투리’로 지적받던 ‘하드랩두(하더라도)’, ‘∼하걸랑요’, ‘∼했그등요’ 등의 말투를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국어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라고 봤었었을 때’(라고 볼 때) ‘이렇게 가져가야(이렇게 해야)’ 등의 비문 사용은 많이 고쳤다. 허 위원은 서부경남의 드센 억양과 발음이 큰 벽이다. ‘방망이가 셴(센) 선수’ 같은 말은 좀처럼 고치기 힘들다. 말을 빨리하다 보면 ‘찬호가’ ‘김병현이가’처럼 선수 이름 다음에 ‘선수’라고 붙이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하 위원은 ‘한 박자 앞서가는 해설’을, 허 위원은 ‘심플하지만 강약이 있는 해설’을 다짐한다.

“‘위험한 해설’이라고 주위에서 우려도 했지만 시청자들이 한 수 위에서 게임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 위원)

하 위원의 주특기는 투수가 던질 다음 공의 구질 알아맞히기와 스퀴즈번트, 히트 앤드 런 등 작전을 예상하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 “자, 이제 바깥쪽 변화구를 던지겠죠”라고 말하면 정말 투수가 바깥쪽 변화구를 던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가 승부처다. 여기서 점수 못내면 어렵다”고 단언하는 ‘과감성’을 드러내는 적도 많다.

허 위원은 “잠시 동안의 침묵도 중요한 해설입니다. 말을 쏟아부을 때도 있어야지만 아껴야 될 때도 있는 법이거든요”라고 말한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뉴욕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을 때 현지 생중계를 했던 허 위원은 당시 캐스터였던 송인득 아나운서를 옆에서 꼬집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며 아나운서 코멘트가 시작되기에 손으로 사인을 줬죠. 그런 때는 TV 화면으로 선수들의 환호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은 법입니다.” (허 위원)

서로의 해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 해설자의 해설도 모니터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무의식 중에 다른 해설자의 스타일을 흉내낼 소지가 있다는 게 이유다. 하 위원은 대신 프로농구나 대학배구 아이스하키실업리그전 등 다양한 종목 중계방송을 즐겨 보고, 경기장도 찾는다.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서 야구와 다른 체육경기들을 접목할 것이 없나 찾아보기 위해서다.

영어와 일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허 위원은 개인 사무실에서 AFN, NHK위성방송 등을 틀어놓고 외국 야구중계를 모니터한다. 외국 중계에서는 ‘두루뭉술한 말’을 사용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허 위원은 “LA 다저스의 히데오 노모 선수의 경기를 중계방송하는 일본 해설자를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노모가 폭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예외없이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거나 ‘손에서 공이 빠졌군요’ 했을 거예요. 일본 해설자는 ‘손에 악력(握力)이 떨어져 포크볼을 제대로 못 던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정교하게 접근하더군요.”

하 위원은 올해가 22년째, 허 위원은 20년째다. 데뷔 시절 회당 3만7500원의 중계료를 받았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둘 다 연봉으로 1억원 정도를 받는다. 둘은 모두 “만족했던 중계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항상 생방송이고, 대본없이 3시간 이상 떠들다 보면 ‘퍼펙트 게임’을 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 10번 예측을 해서 결과를 잘 맞혀도 한번 틀리면 틀린 때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야구해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 해설자 모두 이번 아시아경기에서는 프로 1.5군 선수로 구성된 일본보다 비교적 베스트 멤버로 나서는 대만이 더 껄끄러운 팀이라고 말했다. 6일에는 대 일본전이 있고, 9일에는 결승전이 있다. 하 위원은 요즘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 몸 상태도 예전 같고, 특히 목소리가 맑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허 위원 역시 짬을 내 피트니스센터에 다니며 100% 몸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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