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뮤지컬 '유린타운', 권력은 화장실에서 나온다

  • 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04분


이태원씨(가운데 여성)를 비롯한 ‘유린타운’ 출연진이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실황 음악에 맞춰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이태원씨(가운데 여성)를 비롯한 ‘유린타운’ 출연진이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실황 음악에 맞춰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요즘 서울 예술의 전당 3층 연습실에서는 날마다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10여명의 남녀가 모여서 ‘아랫도리’를 부여잡은 채 춤추고 노래하는 것. 31일∼9월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유린 타운(Urin Town)’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배변의 자유’를 빼앗긴 시민들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연습현장이다.

직역하면 ‘오줌 마을’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이 작품은 ‘화장실 권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공간인 화장실을 ‘유료’로 지배하는 자본가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한판 대결을 그리고 있다. 미국 공연계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토니상의 올해 시상식에서 극본 음악 연출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은 국내 배우들로만 막을 올리지만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명성황후’의 황후 역을 맡았던 이태원을 비롯, 남경읍 이경미 김성기 성기윤 이건명 등 뮤지컬계의 스타와 차세대 유망주들이 출연한다. 순수 제작비만 5억여원을 들였다.

‘유린 타운’ 팀은 6월말부터 매일 8시간씩 강행군을 하고 있다. 연습현장을 찾았을 때 이들은 외국 공연 실황 음반을 틀어놓고 1막부터 끝까지 전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배우들은 대본을 든 채 음악에 한국어로 입을 맞추며 땀을 흘렸다. 하지만 이태원 만은 예외였다. 20년 넘게 미국생활을 한 그는 연습 틈틈이 유창한 원어로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압도했다. 동료 배우들이 부러움과 질시 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이태원은 “영어로는 감정 전달이 수월한데 정작 공연에서 사용해야 할 한국어는 아직도 부족하다”며 걱정이 태산같다.

한 배역에 동시 캐스팅된 배우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불꽃을 튀었다. 한애리 이자영(리틀 샐리), 황현정 박윤신(호프), 문성혁 이동근(바렐 순경) 등은 상대방이 잠시 쉬러나간 틈을 놓치지 않고 ‘나홀로 연습’에 매달렸다.

1996년 국내에서 ‘그리스’ ‘7인의 신부’에 이어 ‘유린타운’의 안무를 맡은 미국의 앨런 버렛은 “한국 배우들의 재기 발랄한 몸놀림이 인상적”이라며 연습 내내 한국 배우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담당 연출가인 심재찬씨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시위장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인이 만나는 장면 등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패러디 했다”며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묘사하면서도 경쾌한 음악과 코믹한 대사가 한국 정서에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극중 등장하는 20여곡은 흥겨움의 극치라 할 만 했다. 1막 피날레 음악이 흐르자 10여명의 출연진의 손과 발은 일사불란하게 위로 아래로 움직였다.

재즈와 록앤롤을 넘나드는 2막의 ‘스너프 댓 걸’ ‘런, 프리덤, 런!’ 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깨춤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즐겁다.

‘유린 타운’에서 코러스로 등장하는 스물한살의 막내 정수영은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 선배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연기를 배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3만∼5만원. 평일 오후 7시반, 주말 오후 3시반 7시반(월 쉼). 02-577-1987, 1588-789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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