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리뷰]2002년 6월의 열풍 패러디 '로컬 월드컵'展

  • 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04분


20일까지 서울 마포구 창전동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로컬 월드컵’전은 제목에서부터 풍자 냄새가 가득하다. 전지구적(글로벌)인 2002년 6월의 월드컵을 한국이라는 지역적(로컬) 시각으로 다시 보자는 것이다.

작가 10여명이 참가한 이 전시는 뜨거웠던 2002 월드컵의 열광을 뒤로 하고 냉정하게 반성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영균의 비디오 작품.

시청 주변 고층 건물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디오는 시작한다. 그러나 왠지 이상하다. 붉은 옷을 입지 않았고 머리는 장발이다. 곧이어 붉은 악마의 모습이 나타나면서 바로 전 화면이 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청 주변의 군중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디오는 2002년 6월과 1987년 6월의 시청 앞을 교대로 오버랩시킨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15년전과 지금, 세상이 진정 얼마나 변했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특히 87년을 경험한 세대라면 가슴 뭉클할 것이다.

박영균은 또 광화문의 한 건물 옥상에서 붉은 악마의 물결을 내려다보는 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통해 군중 속의 고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습의 사진 ‘습이를 살려내라’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직접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광화문에서 1987년 이한열의 모습을 재현해 사진을 찍었다. 월드컵 열기 속에서 이한열의 87년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 발상은 재기발랄하다.

이번 전시는 세상을 냉정하게 보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반성과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패기도 좋은 덕목이다. 그러나 풍자가 다소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부는 장난기 서린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체 게바라와 히틀러 그림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풍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열광하고 머리로 냉소하기”라는 기획자의 말처럼, 이 전시는 오랜만에 만나는 미술의 풍자 혹은 미술의 냉소전(展)이다. 그러나 기획자의 말에 한마디를 더 추가하고 싶다. 풍자는 뜨거운 애정과 진지함에서 나온다는 점을. 02-3142-1693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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