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의 고향을 찾아서 11]다산의 철학세계

  • 입력 2002년 6월 30일 17시 22분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선생 묘[사진제공=오철민 녹두스튜디오 대표]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선생 묘
[사진제공=오철민 녹두스튜디오 대표]
정약용은 한적(漢籍)으로 약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긴 만큼 그의 학문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고전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주석서를 통해 그의 철학적 체계를 세워나갔을 뿐 아니라, 일표이서(一表二書)라 일컬어지는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통해 사회제도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철학적 입장은 성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이(理)와 성(性)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조선성리학에서 절대적 개념으로 받들어 온 ‘이’에 대해 훈고학적 검토를 하면서 ‘이’ 개념이 송대 성리학에서 왜곡돼 왔음을 비판했다. ‘이’를 절대화하면서 ‘이’ 개념이 지나치게 많은 함의를 담음으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사람들을 혼돈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관련된 조선유학자들의 견해차도 개념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임을 지적하고, 나아가 인성물성론(人性物性論)에서 ‘이’와 ‘성’의 관계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존재로 구분해 냈다.

그에 따르면 ‘이’란 “사랑과 미움도 없고 기쁨과 성냄도 없으며 텅비고 막막하여 이름도 형체도 없는 것”이다. 인간과 만물의 도덕성의 근거라고 여겨져 온 ‘이’의 가치론적 의미를 배제하며 절대적 권위를 부정한 것이다. ‘성’이란 주희가 주장하듯이 ‘이’가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기호(嗜好)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성’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가는 일종의 성향이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에게만 보편적으로 주어진다는 도덕성이 상제인 하늘로부터 부여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조선성리학을 직접 비판하기보다는 철저한 훈고학적 비교를 통해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받들어 온 주자학이 공자 본래의 유학을 왜곡한 또 하나의 역사적 산물임을 드러냈다. 그는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급에 기반한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을 만큼 기존의 가치관 자체는 상당부분 인정하면서도, 주자학적 체계에 기반한 당대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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