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정옥자/'목민심서' 읽었나요?

  • 입력 2002년 6월 9일 22시 40분


요즈음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인사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학교에서도 곧 총장선거가 있고, 지방선거가 불과 며칠 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평소 소 닭 보듯이 서먹한 사이였던 이들이 갑자기 친절해져서 어리둥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동네에선 날렵한 치마저고리 차림의 운동원들로부터 최고의 경례를 받는 맛이 썩 괜찮다고 농담하는 이도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선거의 묘미를 즐기는 사람보다 선거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검증안된 지방의원 후보들▼

투표를 여러 번 해야 한다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어 그만둘까 마음먹고 있었더니 홍보물이 왔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후보들을 들여다보니 시장 후보는 누군지 알겠고 구청장 후보로는 현직 구청장 이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시의원, 구의원 후보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알 재간이 없었다. 지역사회의 온갖 위원을 역임해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현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직업세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홍보물을 보니 한결같이 지역 발전에 힘쓰고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우고 있으니 무엇으로 옥석을 구분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어 어느 정도 검증된 시장 후보말고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을 가려 한 표를 찍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투표를 안 하자니 찜찜하고, 하자니 눈감고 아무나 찍는 꼴이 될 터이니 위험천만이다. 최선이나 차선을 알 수 없으니 최악이나 안 되도록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더구나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의 경우 제대로 검증이 안 되는 틈을 타 전과자까지 출마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선거가 전과자를 합법화해주고 그들에게 권력이라는 날개까지 달아주는 결과까지 낳는다면 그야말로 선거망국론이 나올 법하다.

함량 미달자를 뽑아 비리를 키우는 꼴이 되리라는 우려의 소리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상대에 대한 흑색선전과 원색적 비난도 도를 한참 넘은 것 같다. 평범한 시민들도 안 쓰는 거친 말을 골라 하는 것을 보면 교양 있는 언동은 맹물 같아서 관심을 끌지 못하니 차라리 선관위에 반납해버리고 자극적인 말만 골라 써서 시선을 끌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름 석자 알리는 것이 전략인지 국민은 ‘유명함’과 ‘악명 높음’도 구별 못하는 줄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이지만 이들 지방선거 후보들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시험해보는 방법은 어떨까 한다.

이 책은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이 쓴 대표적인 저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와 함께 다산 3서로 불린다. 당시의 지방관인 수령이 부임하는 시점부터 해관해 돌아오기까지의 필수사항을 낱낱이 적어 놓은 것으로 지방관의 필독서다. 지방관을 목민관이라 한 것은 이들이야말로 국민을 직접 대하고 일하므로 그들을 보살피는 최일선 공직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 지방관이 마음에 새겨야 할 덕목들을 낱낱이 써 놓고 있어서 오늘날의 목민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자질은 ´청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외국행 비행기를 탈 때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대비해 이 책을 꼭 비치토록 했다는 일화도 있다. 비록 읽지는 않고 선전용으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일지라도 이 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지자체 공무원들이 읽어야 한다.

그 중 율기(律己)편에 나오는 한 구절. ‘청렴함은 수령의 본무이고 만선(萬善)의 근원이자 제덕(諸德)의 뿌리다. 청렴하지 못하고 지방수령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청렴을 말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 무엇도 인물 검증의 잣대가 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유권자의 이름으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시험이라도 보면 어떨까 하는 백일몽을 꾸어 본다.

정옥자 서울대교수·국사학·규장각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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