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억대연봉 뒤엔 땀과 눈물…컨설턴트 '환상'을 깨라"

  • 입력 2002년 5월 23일 14시 34분


위는 모니터그룹이 올 가을 학기 입학예정자를 대상으로벌인 설명회장이고 아래는 미국 컬럼비아대 캠퍼스
위는 모니터그룹이 올 가을 학기 입학예정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명회장이고 아래는 미국 컬럼비아대 캠퍼스
16일 오후 7시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이색적인 디너파티가 열렸다. 페라가모와 에르메스 등 고급 넥타이를 맨 깔끔한 스타일의 젊은 남자들과 정장 차림의 여자 등 50여명이 음료수를 들고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고급 사교파티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이날 모임은 다국적 전략컨설팅업체인 모니터그룹이 올 가을 학기에 이른바 톱스쿨 경영학석사(MBA)과정에 입학하는 35명의 한국인 예비 MBA들을 초청한 자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 MIT 슬론스쿨, 하버드대, 미시간대, 시카고대, 컬럼비아대 입학 예정자들이 참석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학기 도중에 톱스쿨 MBA 재학생들을 초청해 파티를 갖기는 하지만 입학 전부터 불러 모으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컨설팅업체의 가장 큰 자산은 인재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MBA출신들을 뽑는 것이 경쟁력의 관건이죠. 자사 홍보도 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미리 스크린해보자는 차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모니터그룹 송기홍 부사장)

마틴 켈더 사장의 인사말이 끝난 뒤 아시아지역 리크루팅 총책임자인 조원홍 이사는 참석자들에게 컨설팅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대해 설명했다.

“컨설턴트로서 항상 배우고 공부할 자세가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우리는 학문을 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직업이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며칠씩 밤을 새울 열정과 책임감이 있느냐를 살핍니다. 판단력과 논리력 등의 기술은 기본이고 고객을 설득하려면 풍부한 유머감각도 있어야겠죠.”

컨설팅업체에 대해 기대가 큰 참석자들은 조 이사의 설명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조 이사는 “무작정 MBA과정을 밟는 것보다 미리 업계에서 어떤 사람을 요구하는지를 알고 공부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채용하는 쪽에서도 이를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에 더 편하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자 각 테이블에 나눠 앉은 15명의 모니터그룹 컨설턴트들은 MBA 후배이기도 한 입학 예정자들과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얘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입학 예정자의 관심은 ‘컨설턴트의 세계’와 ‘MBA 2년을 어떻게 무사히 마칠까’에 모아졌다.

“컨설턴트로서의 겉멋은 일찌감치 잊는 게 좋아요. 억대 연봉을 받지만 법정 근로시간의 2배에 달하는 주당 80시간을 일하니까요. 시간당 임금을 따지면 그리 높지 않아요.”

모니터의 컨설턴트들은 후배들이 컨설턴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을 깨뜨리는 데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선배들이 모인 때문인지 MBA과정의 첫 관문인 중간고사에 대해 ‘혼자 공부해선 승산이 없다’ ‘한국인끼리 스터디그룹을 만들지 말고 반드시 미국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스터디그룹에 끼어라’ 등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쏟아졌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어갈 무렵 모니터그룹의 한 컨설턴트가 “게임을 시작하겠다”며 행사장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이제 여러분이 컨설턴트로서 얼마나 자격이 있나 봅시다. 우선 컨설턴트는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데 여기 참석한 컨설턴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손들어보세요.”

만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고 단 한 번 컨설턴트들이 자기의 이름을 소개했을 뿐인데 적지않은 MBA 신입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 중 2명은 15명의 컨설턴트 중 9명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해서 앞에 나와 한 명씩 번갈아가며 이름을 대는 게임까지 벌였다.

“컨설턴트는 고객을 재미있게 해줘야 합니다. 자 앞에 나와서 좌중을 웃겨줄 분….”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사회자는 “MBA수업을 받다 보면 질문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강제지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콜드콜(cold call)을 해보겠습니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지목을 받아 행사장 앞으로 걸어나온 한 MBA신입생은 “노래라도 불러라”는 좌중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개만 하고는 끝내 ‘웃기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마치 축제 분위기처럼 장내는 들떠 있었지만 송기홍 부사장과 조원홍 이사 등 모니터그룹 측 인사들은 게임에 참가하는 참석자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행사가 끝난 다음에 따로 모여 비공식적으로 참석자들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MBA 입학생들을 직접 만나면서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행사에서도 예외는 없죠. ‘누구는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리더십이 있고 누구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는 식의 평가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지게 되죠. 이력서와 인터뷰 내용 및 행사에서 느낀 장단점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해놓는 ‘무서운’ 회사도 있습니다.”(송 부사장)

하지만 이날의 행사가 꼭 ‘계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각 MBA 동문들 대표가 나와 맥주를 한 잔씩 들고 누가 연달아 빨리 마시는지를 겨루는 ‘레이스 보트’게임에서는 주최 측과 초청된 신입생의 구분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과시하려는 듯 끈끈한 동문애를 드러냈다. 결승전에서 와튼스쿨과 MIT가 맞붙은 레이스보트 게임의 최종 승자는 MIT.

행사가 끝난 뒤 파티장을 나서는 MBA 신입생들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앞으로에 대한 불안감의 교차가 역력했다. 모니터 그룹의 컨설턴트들은 “꼭 돌아와 함께 일하자”며 후배들의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이제 막 ‘자본주의의 첨병’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후배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눈빛은 왠지 연민어린 것이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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