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아빠 밥먹어…요!"

  • 입력 2002년 5월 9일 15시 03분


그렇게 존댓말을 사용하라고 시켜도 듣지 않던 아들놈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안 있어 어느 날부터 존댓말을 시도했다.

“아빠, 나랑 컴퓨터 게임하자.”

“아빠, 밥 먹어.”

이런 식의 말투에 나는 “그래, 근데 아빠와 네가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이랬니, 저랬니 하고 반말이냐. 아빠가 네 친구니?” 하며 가끔 그 잘못을 지적해 주곤 했지만 아들의 어법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스스로 의식적으로 말투를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갔다요”식으로, 또는 “손 씻었어” 하고 난 뒤 한참 있다가 “요!”하는 식으로 그 사용이 퍽 어설펐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머리를 몇 번씩 쓰다듬어 주는 사이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말투가 모양을 갖추었다.

물론 아들은 그동안 반말을 하면서도 윗사람에게 그다지 무례하게 굴거나 버릇없이 행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말투가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이런 아들의 변화가 퍽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이해 못할 것은 내 마음이었다. 존대를 받는 내가 도리어 쓸쓸해지더니 급기야는 며칠 사이에 복잡한 생각에 휩싸였다. 무녀독남의 아들을 이제 다시는 그가 어렸을 때 해주었던 것처럼 온 몸이 으스러져라 껴안아 줄 수 없을 정도로 커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는 ‘그동안 괜히 존대를 하라고 시켰나 보다’ 하는 후회까지 들어서 예전 그 응석받이 상태의 반말로 되돌리고 싶을 지경이 됐다.

물론 시간이 흐르니 이런 감정마저 무뎌졌다. 어쩌면 기껏 말투 하나에 부자지간의 정이니 아이의 성장이니 하는 것들을 너무 민감하게 유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자는 동안에 말을 걸어도 무의식적으로 존대를 쓰는 것을 보며 아들이 존댓말 습관을 완벽히 체득했음을 느낀다. 잠든 아들을 보며, 그도 자라서 세상을 알면 이런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감상에 잠시 젖게 된다.

김해수 44·대학강사·서울 서초구 양재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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