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원칙없는 문화부 인사

  • 입력 2002년 5월 1일 18시 27분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의 요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임기 1년 이상 남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이 갑자기 바뀐데 이어 다른 기관의 간부들도 연이어 바뀔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양중(尹亮重)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교체가 업무상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자리를 챙겨줘야할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기 무용론’마져 나오고 있다. 문화부 의 40여개 산하기관 임원의 임기는 대개 3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문화부의 인사 편의를 위해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간행물윤리위원장 교체는 자리 나눠먹기의 전형적인 예. 윤 전 위원장은 간행물윤리위의 위상제고와 책읽기 문화 확산에 주력해 내외부의 좋을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특히 지방의 독서지도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하는 ‘독서강연회’에 각계 유명인사를 연사로 초빙해 함께 지방까지 내려가는 등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도 문화부 고위관리가 윤 전 위원장에게 “임기가 남아있지만 그만둘 수 없겠느냐”며 사실상 사직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위원장은 이 얘기를 듣고 지난달 23일 이임식을 갖고 사퇴했다.

간행물윤리위의 위원 20명은 문화부 장관이 위촉하고 위원들이 위원장을 호선하면 장관이 승인토록 돼있기 때문에 문화부에서 사퇴를 종용하면 버틸 재간이 없는 실정이다. 윤 전 위원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위원들 사이에서도 외부 압력의 부당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공론화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궁진 장관은 윤 전 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노성대 전 MBC 사장을 위촉했고 임시위원회에서 노 전 사장이 새 위원장에 선출됐다.

광주출신인 노 전 사장은 1999년 3월 MBC 사장에 취임했으나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년만에 중도사퇴했다. 노 전 사장이 사퇴했을 때도 정부의 압력으로 물러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정부의 입김으로 중도사퇴했던 노 전 사장을 현 정부 임기 안에 봐주기 위해 이번에는 윤 전 위원장을 중도사퇴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동생의 비리 연루 의혹으로 사퇴압력을 받았을 때는 ‘임기 준수’를 내세웠던 정부가 정작 전문성이 필요한 문화단체 인사에서는 정해진 임기를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김차수 기자 kim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