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83세 老화가 김흥수,우여곡절끝 미술관 개관

  • 입력 2002년 4월 29일 18시 12분


《원로화가 김흥수씨(83)가 자기 이름을 단 미술관을 열고 ‘꿈나무 미술 영재’ 양성으로 노년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12일 문을 연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흥수 미술관’. 2000년 1월 첫 삽을 떴지만 그는 완공때까지 2년여동안 말못할 고통을 견뎌야 했다. 》

돈도 돈이지만 일조권 등을 내세워 민원을 제기하고 동네 어귀에 ‘미술관이 웬 말이냐’는 플래카드까지 내건 동네 인심에도 섭섭함이 있다.

개관식때 장 차관 이하 실무자에게 까지 초청장을 보냈으나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문화관광부 인사들 또한 그를 좌절하게 했다.

◇ 동네사람은 직접 안내

그러나 김화백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동네 사람”이라고 하면 반색을 하고 직접 투어를 시켜주며 스스로 섭섭함을 극복하고 있다. 김화백은 “동네에 화가가 산다고 하면 주민들이 힘을 합쳐 미술관도 지어주고 정부가 그 마을을 통하는 길도 닦아주는 일본같은 분위기는 바라지도 않지만, 제발 욕은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1997년 1월 혀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98년 12월 예술의 전당 ‘영재미술학교’의 강의를 하러 가다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다. 부러진 오른 팔이 다시 붙을 때까지 8개월 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지냈다. 하루 30분 이상 앉아있지 못했고 합병증으로 속을 버려 음식을 소화하지 못했다.

김흥수화백을 둘러싼 '꼬마 제자'들이 각자의 '하모니즘'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작품 담보로 6억 대출

보다못한 부인 장수현씨(40)가 미술관 건립을 서둘렀다. 장씨는 “화백님 생전에 작품을 모아 놓고 후계자 양성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족한 돈은 ‘정’(Sentiment·1987)과 ‘불심’(The Mercy of Buddha·19979)’ 등 김 화백의 작품 6점을 은행과 경매회사에 담보잡히고 대출을 받았다.

◇ 칠전팔기의 자화상

77년 7월 그는 미국 워싱턴DC ‘IMF 미술관’에서 ‘김흥수 음양조형주의 미술선언전’을 통해 세계 최초로 구상과 추상의 조화를 모색한 ‘하모니즘’을 주장했다. “구상과 추상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 조화될 때 오묘한 조형의 예술세계가 열린다”는 취지였다.

김흥수화백이 올해 2월에 완성한 '칠전팔기의 자화상'

화폭을 둘로 나눠 한 편에는 주로 누드를 소재로 한 구상을, 다른 한 편에는 원(圓)과 색(色), 선(線) 위주로 표현한 추상을 담아낸 형식. 80년대 후반까지 프랑스와 러시아 등지에서 개인전을 통해 “동양의 한 예술인이 서양화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나국내에서는 “그림을 잘라 한 쪽만 파는 것이 좋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90년대 들어서야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지만 서양의 평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올 1월에는 도쿄에서 일본 도쿄예술대학 동문인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71)화백과 2인전을 열어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말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은 김화백 작품활동을 재개, 최근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자화상’을 완성했다. 몸도 마음도 고달픈 자신의 처지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 초등3년생 이하 뽑아

미술관 지하 1, 2층은 김화백의 상설전시관, 지상 2층은 초대작가를 위한 공간. ‘후계자를 키우겠다’는 의지에 따라 김화백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1층 ‘영재교육미술관’이다.

김화백은 “감각 교육만이 뛰어난 서양화가를 길러낸다”며 아직 감각이 굳지 않은 초등학교 3년 이하 어린이만 받아들여 이곳에서 가르친다.

예술의 전당에서 시작한 ‘영재 미술교실’을 이제는 자신의 미술관에서 본격적으로 심화시킬 계획.

현재 이곳에서 교육받는 어린이는 100여명. ‘오디션’당시 경쟁률은 30대 1이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은 먼저 ‘어두움 옆에 밝음이 있고 차가움 옆에 따뜻함이 있음’을 배운다. 이렇게 색감을 익힌 아이들은 화면을 분할해 한 칸 한 칸 메꿔나가며 각각의 작품이 어울리는 하모니즘을 연습한다. 사람의 얼굴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모두 다른 색으로 칠하지만, 다 칠해 놓고 보면 색들이 어울려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신기한 체험을 한다. 눈 세 개 달린 사람, 사람 머리 위로 날아가는 조그만 사람을 그리며 창의력의 한계는 없음을 안다.

김화백은 “가르친 어린이들이 나를 뛰어넘기를 바라는 것으로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벌떡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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