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서울대 최고 인기강의

  • 입력 2002년 4월 11일 14시 23분


최근 서울대 최고의 인기강좌는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전임강사인 박성봉 교수(46)의 ‘대중예술의 이해’. 그는 같은 강의를 1주일에 7번, 모두 대형강의실에서 진행한다. 한 학기에만 무려 1600∼1700명의 학생이 그 강의를 듣는 셈이다. 강의시간에 그는 자신의 술자리 18번인 이탈리아 칸소네 ‘아모레 미오’를 열창하기도 하고, 아르헨티나 항구도시 뒷골목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음란한 탱고도 춰 보인다. 대중예술을 비판해온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살아나 서울대라는 상아탑을 방문한다면 그저 놀라 자빠질 일이다.

4일 서울대 12동 대형강의실. 오늘은 대중음악 강의.

그는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가 가득 들어있는 큰 검은색 가방을 열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이것 한 번 볼까요?”

최근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타이틀 부분이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에 반납해야 하는데 아까워서 맨 앞부분이라도 같이 보고싶다’며 갖고 온 거야.”

똑부러지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는, 서른 넘은 노처녀역의 여배우 르네 젤위거가‘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손짓 발짓 하며 따라부르는 장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아갈 것이 점점 뻔해지고 있는 한 여자의 답답한 심정이 확 느껴지는 대목이다.

‘올 바이 마이셀프’는 전형적인 미국 스탠더드 팝송이다. 누구도 이걸 위대한 곡이라 부르지 않지만 이 순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와의 만남’이 일어난 그런 노래다.

“우리 누님이 여러분만 했을 때야. 읽지도 않는 카뮈의 ‘이방인’ 같은 걸 옆에 끼고 다닐때지. 한번은 버스에서 내려서 깡충깡충 뛰는 거야. ‘왜 그래’ 물었더니 ‘한 남학생이 뒷좌석에 앉아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줬다’는 거야. 그 남학생, 누님 뒷모습에 완전히 속은 거지(웃음). 그런데 그 노래가 절묘했어.”

'대중예술의 이해' 강의시간에 자신의 술자리 애창곡인 '아모레 미오'를 열창하고 있는 박성봉 교수.

직접 마이크에 대고 그 남학생이 불렀다는 돈 맥그린의 ‘빈센트(Vincent)’를 부른다.

“Starry starry night∼”

학생들의 ‘우’하는 환호가 터진다.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이 쯤 되면 어떤 상황인지 상대방이 파악했을 거고…. Now I understand∼. 이쯤에서 ‘차 한잔 하실래요’ 하면 다 넘어가는 거지.”

그에게 대중음악의 본질은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감동에 있다. 그건 나이든 어른들이 드럼통을 뒤집어놓고 연탄불에 고기 굽고 소주 마시며 젓가락 장단에 맞춰 ‘가련다, 떠나련다∼’ 노래할 때의 그 느낌이다.

“처음 듣는 순간 완전히 내 몸을 실은 음악이 있어. 그리스 음악인데 렘베티카라고…. 렘베티카의 거장 바실리스 차차니스의 은퇴공연을 보던 중 완전히 ‘뿅’가서 나도 몰래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춤을 추었으니 말이야.”

그는 음악을 틀고 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앤서니 퀸처럼 춤을 춘다.

“자! 여러분도 따라해 봐. 이 곡은 내 강의에서 모두 따라 춤을 추는 유일한 곡이야.”

학생들이 겸연쩍어 하면서도 하나 둘 손을 들고 따라한다. 강의실이 순식간에 야구경기장 응원석처럼 변했다.

“렘베티카는 1920년대 그리스와 터키의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탄생했어.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는 한일 관계와 비슷해. 그리스는 터키에 의해 400년 넘게 지배를 받았으니 원한이 더 깊지. 1차세계대전 후 그리스가 터키를 공격했다가 반격을 받아 다시 쫓겨나는 비참한 상황에서 고통을 잊기 위해 만들어진, ‘뽕’의 기운이 강한 음악이야. 퇴폐적인 가사에 터키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 우리 트로트가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은 것과 같아. 요즘으로 말하면 제국주의 타도를 부르짖으며 힙합에 몸을 싣는다 이런거지.”

그는 대중음악을 뽕의 기운, 즉 ‘뽕기’가 살아있는 음악으로 정의한다. 듣는 순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바로 이거야’라는 느낌을 주는 것을 그는 뽕기라고 부르거나, 가끔 하이데거식으로 고급스럽게 ‘존재와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뽕기가 없는 음악은 취하지 않는 술과 같고 얼굴만 예쁜 여자와 같다. 한국의 이미자,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 중화권의 덩리쥔 등이 바로 그 ‘뽕기’가 살아있는 음악을 들려준 대가수들이다.

“95년인가? FM 라디오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 녹음기를 누른 적이 있어.”

그때 들은 음악은 인천 토담굿의 명인 전태영 선생의 ‘뱃노래’. 그가 강의시간에 보여주고 들려주는 수많은 영상과 음악은 무슨 편집광적 취향을 가지고 수집한 것이 아니다. 그건 모두 어느 순간 우연히 그와 ‘인연’이 닿았던 자료들이다.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혹은 학생들이 한번 감상해보라고 슬쩍 건네주는 자료를 검토하면서 그 자신부터 감동을 느꼈던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자료들은 늘 살아있다.

“전 선생은 소리를 전공하지 않았고 그의 노래는 조악한 테이프에 아무렇게나 녹음된 것이지만 탁, 탁, 소리를 끊는 부분이나 시김새(소리를 길게 늘이는 창법)가 아주 모던해. 이런 식으로 우리 가락이 발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전통 가락을 나름대로 현대화했다는 김민기 김영동 장사익 등의 노래는 그가 보기에 고인이 된 전 선생의 모던함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어딘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이 지점에서 그는 의식이 감정을 앞서가는 의식과잉의 ‘비판적 대중문화론자’들과 갈라선다. ‘긍정하는 대중문화론자’로서 그는 신중현 김현식 등을 거쳐 ‘루비’를 부른 핑클 옥주현의 노래에서 오히려 ‘삶의 맥락’을 느껴왔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스웨덴어과 75학번이다. 당시 스웨덴어를 배워서 뭐하나 고민도 했는데, 과학자이면서 ‘구름에 달가듯이’라는 인기 여행기를 쓸 정도로 견문이 넓었던 아버지(작고한 박동현 전 덕성여대 물리학과 교수)가 “스웨덴어 공부해서 예쁜 스웨덴 아가씨 300명의 리스트만 확보해 달라”며 격려해(?) 눌러앉았다. 해병대 장교로 지원해 군복무를 마친 후 83년 당시로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중문화 강의를 개설하고 있던 스웨덴 웁살라 대학 미학과로 유학을 갔다.

95년 귀국한 뒤 97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대중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맡았을 때 학생들은 이승환의 ‘천일동안’.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전람회 김동률의 ‘취중진담’ 등에 열광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는 처음에 이런 노래에서 ‘뽕’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그 감각의 차이를 그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 세대와 과거 기타 학원을 다닌 세대의 차이라고 이해한다. 피아노 학원 세대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뽕’의 기운은 한차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던 것이다.

“예술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대신 “예술은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다”라고 대답한다. 술좌석에서 노래를 잘 못하는 선배가 노래를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음정도 서툴고 박자도 어긋나는데 무언가 감동이 일어난다. 노래가 끝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 선배에게 술잔을 권한다. “형, 한 잔 받아요. 형 노래 정말 예술이네.” 이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예술의 정의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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