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남을 배려하는 마음

  • 입력 2002년 4월 11일 14시 13분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닥터’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유능한 외과의사 윌리엄 허트는 남에 대한 배려가 뭔지 모르는 남자다. 워낙 잘 나가고 있어서 도무지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고나 할까. 자살하려고 5층에서 떨어진 남자를 수술하며 “다음 번엔 10층은 돼야 할걸!” 따위의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위인이다.

한 수련의가 조심스럽게 환자와의 관계에서 감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단칼에 “No!”를 외친다. “유능한 의사는 실력으로 환자를 살려내기만 하면 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가정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적당히 바람피우는 게 동료에게 자랑거리다. 모처럼 일찍 들어간 날, 아내가 아들에게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하자 놀다가 집안으로 뛰어든 아들은 수화기를 집어들고 시큰둥하게 말한다. “아빠, 안녕.”

그러던 어느날 그의 인생에 일대 반전이 찾아온다. 후두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그를 담당한, 역시 유능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여의사는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아줌마다. 차갑고 형식적인데다 유머감각까지 없어서 그를 ‘돌게’ 만든다.

그리고 이쯤에서 관객의 짐작대로(?) 그의 삶에 회개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오만하고 잘난 체하고 남의 이목에나 신경쓰며 저만 위해 살아왔는지 통렬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젊은 여자와 친구가 되면서 그는 진정으로 삶과 화해하는 법도 배운다. 환자에게 감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여선 안된다고 외치던 그가 수련의들에게 아예 일주일 동안 환자가 돼보는 실습을 시키기도 한다.

“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느끼는 슬픈 감정이 뭔지 몰랐어, 이젠 알아, 그건 외로움이야”하고 말하는 아내와도 예전의 관계를 회복한다. 먼길을 돌아서 왔지만, 그는 마침내 자신이 아닌 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남의 이목 때문에 점잖게 구는 것과 진심에서 우러나온 배려를 혼동하는 수가 있다. 물론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과 필요 때문이다. 반면 배려는 남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 자신, 인생의 쓴 맛을 보며 후회한 다음에야 그걸 깨닫지는 말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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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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