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奇 貨 可 居(기화가거)

  • 입력 2002년 3월 3일 17시 23분


奇 貨 可 居(기화가거)

貨 -재화 화 閥-벌열 벌 諸-여러 제 盾-방패 순 葬-장사지낼 장 癒-병나을 유

예나 지금이나 장사의 要諦(요체)는 有無相通(유무상통)에 있다. 즉 흔한 곳의 財貨(재화)를 귀한 곳에 유통시켜 편중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상인은 먼 장래를 내다보고 미리 마련해 두기도 한다.

중국에서 財閥(재벌)이 등장한 것은 천하가 어지럽기 시작하던 春秋時代(춘추시대)부터였다. 孔子의 弟子 중에 子貢(자공)이 있었다. 그는 물건이 쌀 때 사들였다가 비쌀 때 내다 파는 방법으로 거금을 모을 수 있었다. 춘추말기의 財閥이었던 것이다. 후에 孔子가 諸國(제국)을 遊說(유세)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財力(재력) 덕분이었다고 하니 지금 말로 하면 모범적인(?) 産學協同(산학협동)이었던 셈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에 오면 전쟁이 더욱 치열했던 만큼 무기상과 葬儀社(장의사)가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矛盾’(모순)의 고사는 이 때 나왔다. 또 葬儀社가 성행했던 까닭은 전쟁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정치재벌이 등장하게 되는데 政經癒著(정경유착)은 이 때부터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자가 呂不韋(여불위)였다. 그는 본디 韓(한)나라 도읍 陽翟(양책)의 상인으로 소금과 비단으로 거부가 된 자였다. 한번은 趙(조)의 수도 邯鄲(한단)에 들렀다가 우연히 人質(인질)로 와 있던 秦(진)의 왕자 子楚(자초)를 만나게 되었다. 상업의 鬼才(귀재)였던 지라 첫눈에 그의 값어치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이 터져 ‘음, 투자해 볼만 한데!’(奇貨可居!)하고 말했다.

마침내 그는 ‘天子의 자리’를 투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부터 그는 子楚에게 금전공세를 펴는 것은 물론 그를 위해 秦의 고관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여는가 하면 秦나라에까지 금전공세를 폈다. 그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愛妾(애첩) 趙姬(조희)까지 바쳤는데 이미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물론 훗날 그를 귀국시켜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의 투자는 적중했다. 秦은 子楚가 해외에서도 명성을 날리자 귀국시켜 왕위에 앉히니 이가 莊襄王(장양왕)이다. 그 뒤 莊襄王이 일찍 죽고 아들이 계위하니 이가 유명한 秦始皇(진시황)이다. 그러니까 秦始皇은 呂不韋의 아들인 셈이다. 옛날의 애첩과 함께 국권을 쥐고 富貴榮華(부귀영화)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奇貨可居란 본디 ‘기이한 물건이라 일단은 사 둘 값어치가 있다’는 뜻이다. 곧 ‘투자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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