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김성곤교수, 생태소설 '미국의 송어낚시'10년만에 재번역

  • 입력 2002년 2월 25일 18시 00분


“이제는 이 책과 작가로부터 받은 마음의 선물에 어느 정도 보답한 것 같습니다.”

영문학자 김성곤(서울대 교수)이 ‘미국의 송어낚시(효형출판)’를 재번역해 내놓으면서 한 말이다.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67년 발표한 이 소설은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환경문제와 맞물려 ‘생태주의 소설’의 원조격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김교수는 1991년 이 책을 처음 번역 소개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쇼 프로그램 코멘트까지 인용하는 특유의 풍자가 우리 독자들의 접근을 방해했던 것. 심지어 서점들은 이 책을 ‘낚시’코너에 진열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재번역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각주와 해설을 붙여 훨씬 세심한 길잡이 역할에 나섰다. 이 책으로부터 그는 어떤 마음의 선물을 받았던 것일까.

“1978년 미국 유학시절 초기에 이 책에 마음을 빼았겼지요. 60년대 청년운동 세대는 너나없이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고, 70년대 말에도 그 영향력은 컸어요. 달에서 가져온 운석에 이 책 주인공인 ‘쇼티’의 이름을 붙였을 정도이니까요.”

산업화와 개발논리가 지배하던 동양아시아의 소국에서 온 영문학도의 가슴에 브라우티건의 짤막한 문장들은 강력한 힘으로 파고들었다.

“현대 산업사회의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인지,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것인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주인공은 송어낚시하기 알맞은 하천을 찾아 황야를 돌아다니다가 되돌아온다. 그는 아버지대로부터 물려받은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신화가 사라진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딸을 데리고 다시 여행하면서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이상을 되찾아보려 한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김교수가 주 연구대상으로 선택하게 된 데도 이 책의 영향은 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생태주의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죠. 그러나 모더니즘은 문명과 개발을 중시하고, 이를 탈각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태주의와 맞물립니다.”

그는 1983년 작가인 브라우티건을 찾아 인터뷰를 가진 뒤 이를 한 문예지에 소개하기도 했다. 작가는 청바지와 차림이었고, 웃음이 많은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를 번역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브라우티건은 1984년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맥락을 이해하면 쉽고도 ‘강력한’ 책입니다. 일본에서도 브라우티건의 책이 11권이나 번역됐죠.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큰 반향을 얻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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