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몇시간이라도 '생각없이' 사는 노력을

  • 입력 2002년 2월 7일 15시 56분


Q : 올해 서른살이 된 미혼여성입니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잘났다는 남자들과 경쟁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대학졸업 후 지금까지 여자라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요. 오히려 남자동료들로부터 너무 완벽하게 일하려고 한다는 소리를 듣지요. 사실 어쩌다 쉬는 날에도 회사일 생각뿐입니다. 가끔 이러다가 내가 어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이제라도 제 취미생활을 갖고 싶은데요.

A : 남자들 위주로 틀이 짜여진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하지만 문제는 이런 경쟁과정에서 자신의 성격은 물론 건강까지도 희생하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서 “너, 사람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요?

완벽주의자의 다른 이름은 강박증환자입니다.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욕심이 많다는 것은 일의 빈틈이 생기는 것을 남보다 더 불안해 하고 못 견뎌 한다는 뜻일 따름입니다. 이런 분들은 집에서 쉬면 더 불안해 합니다. 자유롭거나 행복한 느낌이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불안으로 쉽게 이어지곤 하죠. 또한 남들로부터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심장이나 혈관계통의 이상으로 급사할 확률이 남들보다 훨씬 높아요. 미안합니다만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우화가 있습니다. 그늘 아래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나무가 있었답니다. 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나무그늘에서 쉬면서 배가 고프니 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빵이 바로 나타났죠. 언제나 그렇듯이 배가 부르니 여자생각이 났어요. 그러자 비키니를 입은 예쁜 여자가 한명도 아니고 둘이나 나타나 다리를 주물러 주었죠.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수영장과 집을 상상하자마자 또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 남자는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비라도 온다면? 호랑이라도 나타나서 이 행복을 물어 뜯는다면? 물론 생각한 그대로 됐죠.

이런 분들은 일주일에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동물적인 감각으로 살아보는 것이 좋아요. 생각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시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 할 테니까요.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취미활동을 가져야 합니다. 검도는 어떨까요.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고 일단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잠시만 한눈팔아도 나무막대기가 그대로 정수리를 내려치죠. 아무 생각없이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막대기를 피하다 보면 힘은 들어도 정말 상쾌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럼 동물에겐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바로 이 생각하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말되죠?

www.leisure-studies.com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 문화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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