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운보 김기창 1주기 추모전…불꽃 같았던 예술혼

  • 입력 2002년 2월 4일 18시 34분


운보 김기창의 바보산수 '강호'.1984년작. 65X129cm. 개인소장.
운보 김기창의 바보산수 '강호'.
1984년작. 65X129cm. 개인소장.
《20세기 한국 미술에 있어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존재는 하나의 축복이었다. 운보 미술의 건강한 힘과 치열한 실험의지는 한국 전통회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창출함으로써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건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운보 미술의 독창성이자 그가 20세기 한국 미술에 남긴 족적이었다. 운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그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예술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바보천재 운보 그림전’이 6일부터 4월7일까지 서울 덕수궁 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서 열린다. 동아일보사 국립현대미술관 운보문화재단 공동주최.》

이번 전시엔 195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의 운보 작품 100여점과 그가 생전 사용했던 붓과 벼루, ‘운보화방(雲甫畵房)’이라고 쓴 현판 등 관련 유품 4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는 한국 전통적 회화에 현대적 주제와 기법 미감 등을 어떻게 접목해나갔는지를 살펴보고, 동시에 불구의 몸을 딛고 20세기 한국의 최고화가가 된 그의 순수하고도 치열한 창작욕과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운보를 작가주의에 의거해 바라보고자 했다. 따라서 단순히 시대별 흐름이 아니라 주제별로 전시한다. 1부 ‘입체파적 풍속화’, 2부 ‘예수의 생애’, 3부 ‘바보 산수, 바보 화조(花鳥)’, 4부 ‘추상의 세계’로 나눈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부엔 1950년대 일상 풍경을 독특한 시각으로 해체한 입체파적 풍속화들을 전시한다. ‘군밤장수’ ‘구멍가게’ ‘보리타작’ ‘탈춤’ 등. 화조 인물 산수 등과 같은 익숙한 전통 소재들을 과감히 버리고 전혀 새롭게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전통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 일으키고 동시에 한국화를 한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품들이다. 운보 개인적으로는 추상화의 기초가 된 작품들이기도 이다.

2부엔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이 전시된다. ‘수태고지’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일대기를 파노라마처럼 전개한 역작들. 운보는1952∼53년 한국 전쟁 중에 피란지인 군산에서 이 작품을 그렸다. 김수환추기경이 운보 생애 마지막 전시회에서 특히 감동을 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3부 ‘바보 산수, 바보 화조’는 운보 미술의 백미. 1970년대화조 풍경 인물들을 과장 왜곡 변형하고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바보 산수’ ‘바보 화조’ ‘장생도’ ‘봉래선경’ ‘한정(閑庭)’ 등 그 신선한 파격과자유분방함 해학, 현대적 미감이 돋보인다.

제4부에서는 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시도된 운보의 추상 회화들을 보여준다. 1963년 운보는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유산의 이미지’ 등 추상화 3점을 출품했다. 그렇게 시작된 추상에 대한 그의 의지는 문자추상 봉걸레추상으로 이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의 최은주 분관장은 “운보의 ‘문자도’와 같은 추상화는 특히 운보의 예술적 의식 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중요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다작의 작가인 운보는 평생 1만 5000여점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작은 그 중 100편에 불과하지만 늘 새로운 조형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던 운보의 작가주의 정신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개막식은 5일오후3시. 일반인 관람은 6일부터. 25세 이상 5000원, 19∼24세 4000원, 초중고생 3000원. 02-2020-1620, 02-779-5310∼2.

▼출품작 100여점 모으기까지…▼

이번 운보 1주기 기념전 출품작 100여점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는 어려움도 많았고 에피소드도 많았다. 운보가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여기저기 분산돼있고 소장처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이번 전시작 100여점은 개인 소장이 80점, 공공 기관 소장이 20점. 공공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운보 그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대한생명은 이번에 ‘군상’ ‘굴비’ ‘집’ ‘오누이’ ‘해방’ ‘농악’ ‘과일바구니를 인 여인’ ‘점과 선 시리즈’‘문자도’ 등 14점을 출품했다. 이들 작품은 대한생명이 98년도에 구입한 것으로, 모두 작품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생명의 한 관계자는 “전시 출품 여부를 놓고 고민도 했지만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품하게 됐다”면서 “이들 작품들을 대한생명이 계속 소장해도 좋지만 공공미술기관이 소장해 일반에 공개 전시도 하고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생명은 이번 출품작을 포함해 총 170여점의 운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예수의 일생’연작 30점도 지난해말까지는 대한생명 소장품이었다. 그러나 대한생명이 지난해말 한 개인 소장가에게 일괄 매도했다. 전시 주최측이 대한생명과 대여 협상을 하던 중 판매된 것이다. 주최측은 이 작품을 구입한 소장자와 다시 협상을 벌여 대여 승낙을 얻어냈고 소장자는 대한생명 측으로부터 자신의 집으로 작품을 인도하기도 전에 덕수궁으로 옮겨 전시에 출품했다.

출품작 중엔 유리 화병에 새겨 넣은 ‘검무도’도 있다. 1956년작인 이 작품은 운보가 한 개인에게 선물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동안 소장처가 불분명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앞두고 추적 끝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출품이 이뤄졌다. 또한 청와대 영빈관에 걸려있던 ‘농악’도 청와대의 협조로 이번 전시에 출품됐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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