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호탕한 시인 장욱진 vs 조용한 학자 김상유

  • 입력 2002년 1월 15일 17시 28분


장욱진 '정자'. 52 X 42cm
장욱진 '정자'. 52 X 42cm
장욱진(1917∼90)과 김상유(1926∼ ). 아홉 살 차이인 이들은 한국 현대 화단에서 무념무상의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미술 애호가라면 이들의 그림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17일부터 2월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김상유 개인전을 계기로 두사람의 그림 세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감상해본다.

우선 장욱진과 김상유의 그림엔 욕심이 없다. 산수 자연과 같은 일상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초월적 탈속적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삶의 진솔함을 담아낸다. 그래서 동화적이고 소박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하는 이들의 그림 속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여유가 있다. 이것이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차이점도 많다. 장욱진의 그림이 과감하고 호방하고 자유분방하다면 김상유의 그림은 조용하고 단정하며 세심하고 꼼꼼하다. 갤러리현대의 박규형 큐레이터는 “이러한 차이는 두 작가의 화가로서의 삶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장욱진은 어려서부터 각종 미술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그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장욱진의 그림은 자신감이 넘치며 술취한 듯 일필휘지의 면모가 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거친 나무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반면 김상유는 철학을 공부한 뒤 뒤늦게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그의 화가로서의 삶은 출발부터 고독했다. 아울러 철학도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세심하고 사념적이다. 김상유의 나무는 장욱진에 비해 정적이다.

김상유 '애연정'. 65 X 45cm

그림 속의 인물도 서로 다르다. 장욱진 그림 속의 인물은 당당하게 지상을 걷고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김상유의 그림 속 주인공은 정자에서 조용히 참선을 즐긴다.

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해와 달도 마찬가지다. 장욱진의 그림엔 해와 달이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김상유의 그림엔 달은 거의 없고 대부분 해가 등장한다. 장욱진이 술을 좋아해 갈 지(之)자로 걸으며 달밤에 귀가한 적이 많아서일까. 달이 떠있는 밤시간이 긴장을 풀어주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라면 해가 떠있는 낮시간은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단정함 그 자체다. 그것이 바로 장욱진과 김상유 그림의 차이다.

장욱진은 생전에 다른 작가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고, 김상유는 “나는 장욱진과 비교가되지 않는다. 장욱진은 진정한 대가”라고 말하지만 이번 김상유 개인전을 계기로 같은 듯 다른 두 작가의 그림 세계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상유 개인전엔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유화 100여점과 그가 국내 최초로 제작한 동판화 등이 전시된다. 전시는 무료. 02-734-6111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