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가 보는 20대 보수]'더불어 사는 법' 배워야

  • 입력 2002년 1월 3일 19시 31분


‘자유의 아이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주조한 이 말은 최근 서구에서 등장한 신세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1960년대 ‘히피’와 1980년대 ‘여피’에 이어 자유의 아이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자유의 아이들이란 한마디로 X세대이자 신자유주의 세대다.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X세대라면, 개인주의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대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현재 엇갈린다. 구세대 대다수는 이들을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세대로 낙인찍는다. 소비와 욕망의 ‘작은 이야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정치와 경제 같은 ‘큰 이야기’에는 도대체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진적인’ 히피 세대의 부모들이 보기에 자신의 자녀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보수적인’ 세대다.

하지만 이 보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젊은이들은 불가피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은 개인화 경향을 심화시키고, 이는 다시 새로운 개인주의적 가치와 정치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2의 현대’의 적자(嫡子)가 다름아닌 자유의 아이들이라는 견해다.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도 신세대를 둘러싸고 서구와 유사한 토론이 있어 왔다. 한편에서 신세대의 발랄한 자발성을 주목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의 자기중심적인 속성에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학에서 지켜보면 이 세대의 속성은 명백히 드러난다. 먼저 이들은 1980년대의 ‘386 세대’와는 달리 개인적 선호가 확실하고 무엇보다 탈이념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총학생회 선거가 떠들썩한 잔치였으나 요즘엔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이들의 개인주의가 서구와는 달리 과도하게 비정치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벡은 자유의 아이들이 외견상 비정치적인 것으로 보이나 그들의 행동의 이면에는 사적 영역을 정치화하려는 경향이 감춰져 있음을 강조한다. 즉 자유의 아이들은 자아 섹슈얼리티 신체 등 철저히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주제를 정치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공론화하는데 이런 경향은 ‘사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규범적 토대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신세대에게서도 정치의 주제를 바꾸려 하는 새로운 경향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보다 오히려 돈과 권력, 그리고 소비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수업을 전폐한 채 고시공부 내지 주식투자에 전념하거나 과도하리만치 연애에 열중하는 것이 신세대의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이기적이고 탈정치적인 개인주의’가 우리 신세대의 심층의식을 이루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이 세대가 이런 성향을 갖게 된 것은 우리사회의 발전 과정이 빚은 불가피한 결과일지 모른다. 이들은 과정보다는 결과, 협동보다는 경쟁, 절제보다는 과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 속에서 성장해 왔다. 이 점에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는 동시에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배려의 윤리’를 내면화하는 것이 현재의 신세대에게 요구되는 교육적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를 추동하는 흐름은 다양성과 복합성이다.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는 바로 이런 변화와 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율과 공존의 윤리에 입각해 세계사적 흐름에 걸맞은 새로운 개인주의 원리를 어떻게 모색하느냐에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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