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캘빈클라인 구치향수 "벗은 몸은 아름답다"

  • 입력 2002년 1월 3일 16시 39분


대부분의 오토바이나 엔진오일 등의 광고에는 벗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매음굴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유는? 아마도 오토바이가 남성의 마초(macho) 본능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제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쾌감 질주야말로 남성에 내재해 있는 정복 욕구를 가장 절절히 드러내는 수단 아니던가. 무력으로 적진을 침탈한 후 적국의 여자를 정복하는 것은 무사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코드다.

캘빈 클라인의 향수 ‘옵세션(Ob-session)’의 광고는 그 반대편에 있다. 에로티시즘이 예술적으로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성공적으로 증명해 준 사례다. 이 광고는 누드의 미학을 광고에 접목시킨 전범이 된 작품으로 1989년 당시 미국인 2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좋게 기억하는 인쇄 광고에 선정됐다. 4년 연속 ‘기억률 1위 광고’에 오르기도 했다. 벗은 정도가 심하지만, 추하지 않다.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감상하고 싶은 오브제로 비춰진다. 잘 벗기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다.

향수 광고는 오토바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섹스 어필한다. 향수 자체가 이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섹스 어필 요소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는 카피가 나올 수 있는 것도 향수란 궁극적으로 두 남녀가 알몸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전제로 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구치의 향수 ‘엔비(Envy)’광고는 바로 그 상황을 잘 포착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성을 강요하지 않고 성을 느끼게 한다. 서로에게 이끌린 성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벗은 몸은 아름답다. 특히 여성의 벗은 몸만큼 아름다운 피조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벗은 몸이, 바라보는 사람의 쾌락을 위해 전시될 때는 자극적인 대상물이 돼버린다. 인간의 성기는 의학적으로는 생식기지만 포르노 배우들에겐 상품이다. 용도에 따라 정의도 달리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저술가 조르주 바타유가 지적했듯 죽음(존재의 소멸)의 문제는 심각하게 거론되어 왔지만, 에로티시즘(존재의 출현)에 대해선 그만큼 진지한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다. 에로티시즘은 곧 금기이고, 그것을 깨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위반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 금기의 서슬은 아직도 시퍼렇다. 그러나 금기를 깨고 싶은 욕망은 또 얼마나 큰가?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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