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골탕 지긋 차라리 유학가자"

  • 입력 2001년 11월 18일 20시 07분


올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 사이에 ‘유학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9.11 테러사건 이후 대학 졸업자들은 미국 유학을 꺼리는 반면 ‘널뛰기’ 수능시험에 ‘골탕’을 먹은 수험생들이 재수보다 유학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실태〓수능시험 이후 서울 시내 각 유학원에는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 강남의 J유학원 관계자는 “고3 수험생들의 방문과 전화 상담이 하루 평균 10여건으로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었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유학과 관련된 문의가 많다”며 “다음달 수능성적이 발표되고 나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어학원에도 유학을 준비하거나 고려하고 있다는 고3 학생들의 토플(TOEFL) 강좌에 대한 수강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하루 평균 1, 2건에 불과했던 고3 수험생들의 수강 신청이 최근 10∼2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며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선 교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G고 3학년 담임인 김모씨(43)는 “수능시험 이후 반 학생 50명 중 4명과 유학 상담을 했다”며 “주로 수능 성적이 크게 떨어진 중상위권 학생들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3학년 양모군(18)은 “캐나다와 미국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원인〓유학을 준비중인 고3 수험생과 학부모 상당수는 정부의 무원칙한 교육정책이 이런 세태의 주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능시험을 치른 뒤 호주로 유학 가기로 결정한 박모군(18·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1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교육 정책에서 ‘기약 없는’ 재수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판단했다”며 “실제로 유학을 준비중인 고3 수험생의 대부분이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서울 강남의 S유학원을 찾은 박모씨(45·여·서울 서초구 서초동)도 “아들의 수능 점수가 예상을 크게 밑돌아 걱정이 태산”이라며 “주위의 권유로 미국 유학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종로에 있는 D어학원의 토플 강좌에 수강신청을 한 김모군(18·서울 대진고 3년)도 “수능시험이 끝난 뒤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국내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본격적인 토플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점과 대책〓교육 전문가들은 자칫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마 유학’을 시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선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수속비와 함께 현지 어학 연수까지 할 경우 1500만∼2000만원의 ‘거금’을 들여야 한다. 또 미국이나 캐나다의 웬만한 사립대의 경우 한해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합쳐 2만5000∼3만달러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무엇보다 충분한 준비 없이 유학을 가게 될 경우 현지에서 적응에 실패해 성격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집안에서 게임만 하다가 1년도 안 돼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심할 경우 몇 년 전 사회문제까지 됐던 조기 유학생들의 폭력단체 조직과 남녀 유학생들의 현지 동거 같은 탈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국제 유학원 임종하(林鐘夏) 부원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과 뚜렷한 목적도 없이 무작정 유학을 떠날 경우 대부분 실패한다”며 “적성과 관심을 신중히 고려해 전공을 선택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유학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학어드바이스 정하경(鄭夏景) 실장은 “학생 관리가 철저한 학교 기숙사를 이용하거나 부모가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윤상호·박민혁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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