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대신학자 판넨베르크 "철학은 종교-과학의 중재자"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28분


《위르겐 몰트만과 함께 유럽 개신교 신학의 현대적 흐름을 형성해온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73·사진)가 한국을 방문, 7∼10일 네차례 공개강연회를 가졌다. 그는 ‘창조와 진화’ ‘종교와 과학’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현대 개신교의 핵심 쟁점을 정면으로 다뤄 관심을 모았다.

판넨베르크 교수는 19세기 영국 신학자 찰스 고어가 시도한 유신론적 진화론를 높이 평가하면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 증언들은 성서가 쓰여진 BC 6세기 바빌로니아 사회의 자연에 대한 제한된 지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유로운 창조라는 핵심내용을 전달하는데 문제될 것이 없다”며 “진화의 과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의 갑작스런 출현은 하나님이 역사속에서 계속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믿음과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대에 들어와 사이가 어긋난 종교와 과학은 철학의 중재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간 시간 질량 힘 장(field)등과 같은 자연과학의 기본개념은 철학적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 철학적 개념은 사실 기독교 신학이 오랫동안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것”임을 상기시켰다. 이마누엘 칸트는 자연과학이 측정하는 부분적 공간과 시간은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며 이 영원성과 광대함은 신학적으로 바로 신의 속성과 연결된다는 것.

판넨베르크 교수는 현대 과학의 장 개념을 신학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관심이 많았다. 기계적인 근대 과학이 하나님을 육체가 없고 따라서 작용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해서 추방한데 비해 장 개념은 전기장이나 자기장 같이 물질이 매개하지 않는 힘의 작용을 인정한다. 그는 “장 개념이 무소부재(無所不在)와 같은 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테러사건이후 관심을 끌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먼저 둘 사이의 명확한 차이의 인식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대화의 어려움은 이슬람이 코란을 통해 신구약성서를 대체하고 모하메드의 예언이 예수를 포함한 그 이전의 모든 예언을 능가한다고 보는데서 기인한다”며 “사실 코란의 알라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슬람과의 진정한 대화는 코란을 성서와 동등한 지위에 놓는 데서 출발한다”며 “두가지 문서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특정 시점에서 쓰여진 역사적 산물로 다룰 때 화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역사로서의 계시’ 등을 저술한 판넨베르크 교수는 1928년 독일 쉬테틴에서 태어났으며 칼 바르트 등에게서 신학을, 니콜라스 하르트만 등에게서 철학을 배웠다. 신학에서 그동안 소홀히 다뤄진 현대적 의미의 역사와 과학을 신학의 주제로 내세운 학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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