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양화가 박광진의 놀라운 변신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4분


"그 나이에, 그렇게 변할 수 있다니.”

서양화가 박광진 서울교대 명예교수(67)의 개인전이 늦가을 화랑가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지방과 해외에선 전시회를 열었지만 유독 서울 전시를 꺼려해오던 박교수는 24년만에 서울에서 작품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와 선화랑 두 곳.

전시의 키워드는 ‘과감한 변신’, 그리고 ‘24년만의 서울 입성(入城)’.

“마지막 서울 전시가 1977년이었습니다. 그후 계속 풍경화를 그렸지만 그것만으로 서울 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었죠. 1990년대초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이런 저런 활동으로 바쁘기도 했구요. ”

박교수는 이번에 ‘완전 변신’을 시도한 작품 30여점을 내놓았다. 억새와 갈대밭을 그린 ‘자연의 소리’ 연작들이다.

물론 이전에도 억새와 갈대를 그렸다. 그러나 과거에는 사실(寫實)적인 억새 그림이었으나 이번에는 추상이다. 이번 작품들은 억새와 갈대를 수직의 선으로 단순화시킨 추상화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이전 작품과 다르다.

흔들리는 갈대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신선한 파격이다. 출품작들은 수평과 수직에 의한 엄격한 화면 구성으로, 그래픽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수직은 갈대와 억새의 곧은 선, 수평은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보았던 수평선이라고 한다.

변신에 대한 박교수의 변.

“1990년대 유럽을 오가며 직감적으로 제 그림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 구상화가라고 해도 인간의 추상적 본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90년대말 수직으로 추상화한 갈대 그림을 프랑스 살롱에 전시했더니 반응이 좋더라구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작가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그래서인지 무한히 펼쳐지는 직선의 배열 속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1992∼94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낸 그는 국제조형예술협회 제13차 정기총회(92년)를 치르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조성(95년)에 앞장서기도 했다.

전시는 7일 개막된 이래 성황이다. 진부하고 획일적인 양식이 만연된 한국 구상회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전시장 한 켠에서 “끝날 때까지 두고 봐야죠”라면서 조심스러워하는 박교수. 24년만의 서울 외출에 너무 긴장한 탓일까. 하지만 전시장을 나와 인사동을 걷는 그의 발걸음은 밝고 경쾌했다.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선화랑 02-734-0458.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