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故 김상열 작품 재조명 '언챙이 곡마단' 무대 올라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46분


1998년 작고한 연극인 김상열의 작품이 다시 무대에서 살아난다.

고인의 연극 세계를 재조명하는 연극 ‘언챙이 곡마단’이 21일부터 12월2일까지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무대는 30여년간 작품으로 김상열과 인연을 맺은 연극인들의 참여로 이뤄진다.

최주봉 김갑수 기정수 박정순 정규수 등 중견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연출 김석만(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향 김벌래, 안무 남긍호(마임이스트), 인형제작 강승균(춘천인형극장장) 등 스태프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들은 ‘거마비’만 받고 공연에 참가했다.

‘언챙이…’는 1982년 초연된 작품으로 19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 이 작품은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라는 역사의 질풍노도를 놀이 형식으로 담는 등 실험적 색채가 강하다.

서기 660년 삼국 통일을 꿈꾸는 신라가 5만 대군을 앞세워 백제를 공격한다. 백제는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로 저항하지만 망국의 위기를 맞는다.

연출자 김석만은 “‘언챙이 곡마단’은 김상열의 연극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작품”이라며 “역사적 인물의 행위를 습관과 버릇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은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독특하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김상열은 신라 김춘추는 자기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과신형’으로, 계백은 순교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인물로 풀이하고 있다.

계백과 의자왕역에는 각각 김갑수 정종훈과 최주봉 이대연이 더블 캐스팅됐다. 초연 당시 김춘추로 출연한 기정수가 19년만에 같은 배역으로, 차기환이 김유신으로 출연한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김상열연극사랑회’ 대표이자 김상열의 미망인인 연극배우 한보경이 계백의 아내 아라녀로 등장한다. 한보경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반으로 줄여서라도 매년 한편씩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자왕비로 출연하는 이경애는 “김상열 선생님이 연출한 ‘에비타’를 통해 성악도에서 뮤지컬 배우가 됐다”면서 “무대에서 휴식을 몰랐던 고인의 열정이 그립다”고 말했다.

공연 개막일인 21일에는 오후 6시 특별공연에 이어 문예회관 로비에서 제3회 ‘김상열 연극상’ 시상식이 열린다. 공연은 월∼토 오후4시반 7시반, 일 오후3시 6시. 8000원∼3만원. 02-764-8760.

▲부인 한보경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과 함께했던 연극이 내겐 큰 힘이었죠"

여보! 지난 3년간 난 어떻게 살았을까?

통곡할 틈도 주지 않고 당신을 떠나 보내게 만든 신이 원망스러워 두문불출 한없이 울고만 보낸 날도 있었죠. “엄마, 나 학교 가면 또 울거지”라며 위로하던 어린 딸이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고서야 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내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은 어린 딸과 당신과 함께 했던 연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전에 열일곱살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내 나이 40대에 벌써 환갑상 받게 생겼다고 투정을 버렸죠. 그 철없던 어린 아내가 당신을 재조명하는 첫 작품 ‘언챙이 곡마단’으로 ‘환갑상’을 대신 차립니다. 도와주세요.

그래도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예요. 많은 이들이 당신을 그리워하고 내 일처럼 참여하고 있으니. 겁도 없이 그저 당신을 향한 애절한 마음 하나 갖고 저질러 놓은 이 힘든 작업에 여러 분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배우 스태프, 또 당신의 4인방이었던 김벌래선생님까지.

여보! 우리는 모두 알아요. 이번 공연은 관객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객 한 사람을 위한 무대이기도 하다는 것을. 중앙 한 자리는 비워놓겠어요. 막이 오르면 무대 옆 측면 관객으로 서 계시던 모습이 아니라 정면에 앉아요. ‘그것밖에 못하냐’며 재떨이 날리지 말고. 2001년11월5일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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