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한-일 사찰요리 1인자 선재-모리스님 교류전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49분


《“무에는 무맛이 나야 한다.”

일본 사찰음식 죠진(精進)요리의 1인자인 모리 시도(森至道·64)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은 평생 요리를 수행으로 삼아 온 그의 화두와 같은 것이다. 성철(性徹)스님에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처럼 모리 스님에게는 ‘무에는 무맛이 나야 한다.’》

모리 스님이 지난달 30, 31일 제주 약천사에서 최근 전통 사찰요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한국의 선재(善財·45)스님과 함께 ‘한일 사찰음식문화 교류전’을 가졌다.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을 “승려들이 도통하도록 도와주는 음식”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요리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식 개념은 좀 다르다. 모리 스님은 “흔히 수행하면 참선 탁발 염불 등을 떠올리지만 요리를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일깨우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모리 스님이 선보인 음식 중 그가 꼽은 대표적인 요리는 깨로 만든 두부요리. 육류를 먹지 않는 승려들에게 두부는 단백질 섭취를 위한 꼭 필요한 음식 중 하나이다. 모리 스님은 “깨로 두부를 만드는 것은 공이 아주 많이 드는 작업인데 조리 도중에 잠시라도 헛생각을 하면 맛에 큰 차이가 나고 만다”고 말했다. 요리는 그에게 일체의 망상을 허용하지 않는 참선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찰음식과 같이 일본 역시 향이 강하고 맛이 자극적인 오신채(五辛菜·파 부추 마늘 달래 양파)를 쓰지 않는다. 오신채의 맛으로 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맛으로 무를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양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시마 등을 우려낸 국물이나 소금 설탕 등을 사용한다. 선재 스님은 “일본 사찰음식을 먹어보니 우리 음식에 비해 설탕 맛이 강하다”며 “습한 기후 때문에 소금보다 설탕으로 양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리 스님은 후쿠오카(福岡)현 히토요시(人吉)시 도린사(東林寺) 주지로 일본 3대 선종 중 하나인 황벽종의 승려다. 일본 선종에는 임제종 조동종 황벽종 등이 있고 각기 다른 식사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임제종 조동종에서는 일본인의 일반 음식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먹을 것이 각각 다른 접시에 담겨 나오지만 황벽종에서는 큰 접시에 여러 사람이 먹을 것이 함께 담겨 나온다. 모리 스님은 “황벽종은 우정을 돈독히 하는 대륙적이고 관대한 식사전통을 갖고 있고 이런 점에서 한국의 식사전통과 가깝다”고 말했다.

양국을 대표하는 사찰음식의 대가가 한국은 비구니, 일본은 비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는 비구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일본에서는 사찰음식의 대가들은 거의 다 비구들”이라고 모리 스님은 말했다.

<제주〓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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