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레고'에 빠졌어요"…인터넷동호회 '북적북적'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5분


인터넷 레고 동호회 '레고인사이드'
“레고를 ‘장난감’이라고 말하면 정말 화가 납니다. 몇 차례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아직도 장난감 갖고 노느냐’고 놀려 헤어진 여자친구도 있어요.” (조태상씨·27)

“넉달 전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레고 맞추는 걸 돕다 제가 푹 빠졌어요. 일 끝나면 쪼르르 집에 달려가니 술친구들이 ‘좋은 놈 버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차성조씨·40)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블록에 정신을 뺏긴 ‘레고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레고에 빠진 어른들〓지난해 7월 개설한 인터넷 카페 ‘다음’에 등록한 레고회원은 1900여명. 상당수가 20대 이상이다. 주로 대학생이지만 10대보다는 30, 40대가 훨씬 많다.

어른들이 왜 애들 장난감같은 레고에 빠져들까.

서울 서초구 방배동 개운신경정신과 원장으로 한 인터넷 레고 동호회에서 ‘엽기레고’라는 아이디로 통하는 차씨는 “극히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바이오니클 시리즈 중 '포하투'

“올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아쿠아 존(Aqua-zone)’이라는 작품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리만족을 느꼈어요. 몰두하다 보면 꼭 물속에들어온느낌이들거든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조씨는 “설명서를 보고 그대로 조립하는 것도 쉽진 않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작품을 만들면서 느끼는 희열은 비길 데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레고 개인 홈페이지(www.legoinside.com)를 운영하는 김성완씨(28·KAIST 박사과정)도 “조립하는 동안 어린 시절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게 돼요”라고 말했다.

레고의 가격이 학생들이 용돈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싸지 않은 것도 어른 마니아들이 많은 현실적인 이유다. 레고를 사기 위해 막일을 하는 대학생들도 꽤 있다.

▽불만도 있지만…〓어른들이라도 가격부담은 만만치 않다.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난도 ‘마인드스톰’ 계열은 가장 싼 것이 15만원. ‘엽기레고’ 차씨는 레고에 빠져든 지 넉달 만에 500여만원을 썼다.

레고 본사의 교묘한 마케팅전략도 한 몫 거든다. 인기 있는 모델은 거의 예외없이 시리즈로 시판하기 때문. 한 레고 마니아는 “지금까지 나온 기차 시리즈를 레일까지 다 갖추는 데 5800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출시된 지 2∼3년 된 모델은 단종(斷種)돼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마니아들에겐 불만이다. 신상품이라도 국내에선 팔지 않는 모델도 많아 외국에 주문을 하려면 돈이 곱절로 든다.

하지만 이 같은 점이 오히려 ‘이 모델을 갖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나 하나 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희소성 때문에 중고 모델의 값이 치솟기도 한다.

조씨는 “88년 미국에서 빨간 돛이 달린 해적선 6285 모델을 70달러(당시 환율로 환산할 때 8만∼9만원)에 샀는데 지금 팔려고 내놓으면 최소한 3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아직까지 레고를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시각 때문에 전시회를 열고 싶어도 장소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마니아들의 진짜 불만이다.

<정경준·이진한기자>news91@donga.com

▼주요 레고 동호회▼

모 임인터넷 홈페이지특 징
국내레고 인사이드www.legoinside.com레고의 전반적인 정보 및 친목교류
레고 마인드스톰http://cafe.daum.net/legomindstorms모델 정보교환 및 친목교류
레고샵www.legoshop.co.kr순수 마니아가 간단한 소품들을 인터넷으로 판매. 자료도 제공
레고월드http://tblego.hihome.com레고에 과한 전반적인 정보
해외레고www.lego.com레고 본사
러그넷www.lugnet.com전 세계 마니아들의 정보교류처
브릭셸프www.brickshelf.com레고 갤러리 및 조립설명서

마인드스톰 계열의 로봇

▼할인매장 15%-완구점 20%-인터넷쇼핑몰 최고 33% 할인

레고는 경제공황이 전 세계를 휩쓸던 1932년 덴마크의 한 작은 시골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던 올레 크리스티안센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투리 나뭇조각을 이용, 인형집을 제작하는 데 쓸 미니사다리와 다리미판을 만든 것이 레고의 효시. 그의 아들이 8개의 요철(凹凸)을 결합하는 간단한 연결법으로 특허를 따냈고 지금은 올레의 손자인 켈이 3대째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켈은 단순조립에 그치던 레고의 영역을 프로그램을 입력해 작동시키는 디지털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레고는 크게 시스템, 테크닉, 마인드스톰으로 나뉜다. 시스템은 레고 초창기 때부터 나온 시리즈로 다양한 모양의 블록을 계속 쌓아 가는 형태의 모델들. 기차, 해적선, 성, 우주, 마을, 스타워즈 등 유명 시리즈들이 대부분 시스템에 속한다. 가격은 1만∼25만원까지 다양.

테크닉은 모터나 기어, 빔, 축 등 실제 기계와 비슷한 부품들을 서로 끼워 맞춰 완성시킨 뒤 움직여볼 수 있는 것. 가격은 4만∼30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

마인드스톰은 지능을 얹은 레고다. 마이크로컴퓨터를 사용해 여러 동작을 프로그램화해 입력시키면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15만∼40만원선.

값이 만만치 않은 레고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면 대형 할인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대형 할인매장은 15%, 대형 완구점은 20%정도 싼값에 판다. 백화점 바겐세일 가격도 이 정도 수준. 인터넷에서는 20% 이상, 최고 33%까지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인터넷 레고 동호회에 가입, 30명 이상 단체로 주문하면 40% 가까이 깎을 수도 있다.

<이진한기자>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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