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곧 미국화인가"…한국아메리카학회 논쟁

  • 입력 2001년 9월 23일 18시 44분


'추모의 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美 초등학생들
'추모의 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美 초등학생들
미국은 단지 세계화 시대의 최강자라는 이유 때문에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누명을 쓰는 것일까.

21, 22일 인천 송도비치호텔에서 열린 한국 아메리카학회(회장 윤영오 국민대교수) 연례회의에서는 ‘세계화시대의 미국’을 주제로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 21편이 발표됐으며 국내외 학자 130여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화여대 유장희 교수가 ‘미국적 세계화, 미래로의 회귀?’를 제목으로 공동 기조연설을 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미국이 테러공격을 받기 전에 기획됐지만 세계화, 다원화의 21세기에 과연 미국이 어떻게 자기역할을 새롭게 규정해야할 것인가 등 테러공격 이후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졌다.

◇ 세계화는 미국화?

리처드 펠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미국문화의 세계화, 위협인가 신화인가?’라는 서면 기조연설에서 “세계화는 미국화(Americanization)가 아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문화 획일화를 두려워하기는 미국인도 마찬가지라는 것.

펠스 교수는 미국문화란 기본적으로 유럽 등 해외로부터 들어온 원본의 모방이자 혼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판 세계화의 상징인 ‘맥도널드’만 해도 이탈리아의 피자와 독일의 소시지 패스트푸드점이라는 모델이 있었으며, 현재 미국에서 상종가인 TV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하는가’도 영국 프로그램을 미국형으로 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미국은 이런 문화상품들을 포장하고 판매 유통시키는 기술에서 월등할 뿐 창작 아이디어는 여러 문화에서 수입된 것이므로 ‘코스모폴리탄하다’거나 ‘세계적’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펠스 교수는 또 미국의 문화상품을 타문화권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자문화의 맥락에서 선택하는 것이지, 일방적인 전달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가치가 세계의 가치?

그러나 ‘전쟁 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발표한 데라치 고지 일본 교리쓰여대 교수는 ‘미국도 세계화의 수용자이자 희생자’라는 펠스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 스스로가 ‘미국이 곧 세계, 미국의 가치가 곧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국가이념으로 내면화해왔다고 주장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전후에 “미국적 민주주의가 곧 인류의 미래를 위한 보편 타당한 가치”라고 역설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신세계를 안전하게 지켜야 할 임무가 미국에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는 것.

데라치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미국적 민주주의’는 본격적으로 다민족국가의 양상을 띠어 가는 미국의 내부를 결속시키기 위한 국가이념이었다. 당시 미국은 인구의 14%가 미국 밖에서 태어난 다민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서로 다른 가치관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묶어내려면 어느 한 민족의 종교나 문화에 기초한 가치가 아닌 보편가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미국적 가치(민주주의)의 세계화’는 194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안한 유엔이라는 기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때부터 “우리 유엔은(We of the United Nations)…”이라고 얘기하며 미국을 유엔과 동일시함으로써 미국의 외연을 세계공동체로 확장해갔다. 윌슨 대통령처럼 “우리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인종 민족 지역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지키기 위해 싸웠던 자유는 20세기 베트남에서 베트콩이 요구하는 자유와 부딪쳤고, 2001년에는 “우리를 알라의 뜻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라”는 아랍 근본주의자들의 ‘자유’와 충돌해 미국적 보편가치에 대한 반성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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