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묘' 논쟁 진위 가리기위한 발굴작업

  • 입력 2001년 8월 7일 18시 43분


온달 묘 논쟁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발굴 작업이 이뤄진다.

충북 단양군은 한양대 박물관에 의뢰해 다음주부터 영춘면 사지원리의 돌무덤(일명 태장이 묘·사진)에 대한 발굴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태장이 묘는 고구려계 방단형(方壇形) 적석총(積石塚)으로 지름 22m, 높이 10m 규모의 묘 6기가 3000㎡에 걸쳐 군집을 이루고 있다.

이 묘가 고구려 평원왕 때 무장인 온달(溫達·?∼590) 묘로 추정되는 것은 그렇게 구전돼 온 데다 주변에 관련 유적이 적지 않기 때문. 여기서 18㎞ 가량 떨어진 영춘면 하리 구인사 인근의 아단성(阿旦城)과 주변 동굴은 온달산성과 온달동굴로 불린다.

삼국사기 권45 온달전에는 ‘(온달이) 떠날 때 맹세하기를 입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 하고 나가 신라 군사들과 아단성 아래서 싸우다 유시(流矢)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입현과 죽령은 지금의 경북 문경과 풍기 인근의 고대 교통로.

하지만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온달과 평강공주(平岡公主)의 묘가 평양시 무진리 동명왕릉(東明王陵) 부근에 있다고 소개해 논란이 일었다.(본보 지난해 6월 22일자 A29면 참조)

학계에서는 △온달은 변방을 지킨 무장이었기 때문에 싸우고 묻힌 곳이 고구려 수도인 평양일 가능성이 낮고 △북한이 온달 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점 등을 들어태장이 묘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단양〓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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