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학회 '한글 글자체 되찾기' 나서…관인교체운동 펴기도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46분


“한글 인장(印章)의 왜곡된 글자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한글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전각학회가 한글 인장의 구부러지고 복잡한 국적불명의 글자체를 훈민정음체 등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관공서의 관인(官印)을 비롯해 각종 인장의 한글 글자체는 획을 심하게 구부리고 변형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해독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전각학회는 인장의 한글 글자체 왜곡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 각종 인장의 한글 글자체를 고쳐 나가는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우선 행정자치부에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인을 모두 교체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한 이같은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도 8월 중 펴낼 계획. 한국전각학회는 1995년 서예가 여초 김응현씨의 주도로 창립됐으며 현재 서예가 전각인 200여명이 회원으로 있다.

서예가이자 전각인인 진영근 한국전각학회 감사는 “더이상 미룰 경우 우리의 전통 인장 문화는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이라면서 “훈민정음이나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에 쓰인 한글 서체를 바탕으로 전통에 뿌리를 둔 글자체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글 인장의 글자체가 이처럼 왜곡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잘못된 관행이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19세기까지는 모두 한자 인장이었다. 한자 인장은 대부분 전각(篆刻) 인장. 전각은 전서(篆書) 예서(隸書)와 같은 글자체로 새기는 인장을 말한다. 흔히 보아온 낙관(落款)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인장이 바로 이 전각이다. 전서와 예서는 모양을 변형해 일종의 상형문자처럼 꾸민 글씨로, 한자에는 어울리지만 한글에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일본인 인장업자들은 유별나게 한자를 구부리고 변형시켰다. 이같은 잔재가 본격적인 한글 인장이 등장한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전각학회의 이정호 사무국장은 “결국 일제시대의 잘못된 인장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탓에 한글 인장이 왜곡됐고 이후에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장은 원래 서예와 조각이 합해진 전통 종합예술. 따라서 한글 글자체를 바로 잡는 것은 인장의 예술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보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진영근 감사의 설명.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글씨 획으로 인장의 공간을 모두 채우려 해선 안된다. 그렇게 공간을 채우는 것이 여백을 두는 것보다 훨씬 쉬운 작업이다. 하지만 한글 인장은 여백을 많이 두는 것 이 더 아름답고 한글에 더 어울린다. 한자와 다르다.”

한국전각학회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훈민정음체나 용비어천가체 월인천강지곡체는 품격과 아취, 여백의 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서예가들의 평가다.

인장의 한글 글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1999년 대한민국 국새를 새로 제작할 때 이런 의견이 반영되어 훈민정음체를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고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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