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바이러스 검출]소독 잘안해…노후관 통해 유입될수도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40분


“정수된 수돗물에는 바이러스가 없다.” 그동안 ‘수돗물 바이러스’ 논쟁에 대한 환경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2일 환경부가 이를 뒤집고 바이러스 검출 사실을 공식 확인함으로써 수돗물을 먹어온 국민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믿고 먹을 수 있는 물’을 공급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염 원인〓환경부가 수돗물의 바이러스 분포실태 조사에 착수한 것은 97년 12월31일. 서울대 김상종 교수(생명과학부) 등 학계 일각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국 정수장 589곳 중 55곳에 대해 조사를 마친 결과 하루 10만t 이상을 처리하는 대규모 정수장 24곳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하루 10만t 미만의 작은 정수장 31곳 중 일부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 특히 일부 지역 가정급수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조사결과를 보면 바이러스가 정수장에서는 검출되지 않았으나 가정급수에서 검출된 사례도 있고 정수장에서는 검출됐으나 가정급수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곳도 있다. 즉 정수 처리가 미흡해 바이러스가 죽지 않았지만 어느 가정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알 수 없거나 정수 처리는 제대로 됐으나 가정으로 공급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 검출 원인은 △정수장에서 소독약인 염소를 덜 넣었거나 소독시간이 짧았을 경우 △낡은 수도관을 통해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가능성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바이러스 검출된 정수장 및 가정급수
-1차 조사(98년)2차 조사(99년)3차조사(2000년 5월∼2001년 5월)
조사대상특별·광역시 초대형정수장 6곳시설용량 10만t이상 대형정수장 20곳중소규모 정수장 40곳
상수원수(上水原水)서울 구의 광암, 부산 덕산, 대전 월평대구 매곡, 경북 구미,경기 시흥 일산 군포, 경남 김해경기 하남 남양주 여주 양평, 충북 옥천, 충남 공주, 전남 여수 담양, 전북 완주
정수(淨水·정수처리 거친 물)없음없음경기 남양주 양평, 충북 영동, 경북 영천
가정급수(수도꼭지 물)없음없음경기 하남시 신장2동, 여주시 여주읍 흥문1리, 충북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충남 공주시 옥룡동

▽정부 대책과 문제점〓환경부 김명자(金明子)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수장 운영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2005년까지 19조6000억원을 들여 15대 정책과제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우선 문제가 된 정수장의 정밀 기술진단, 전국 중소 규모 정수장의 소독능력 일제 점검과 함께 먹는 물의 수질기준을 2005년까지 85개로 늘리고 수돗물 바이러스 처리기준도 도입하며 하수 및 폐수 종말처리장에 대한 소독시설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것.

이번 조사에 참여한 경희대 정용석(鄭龍錫·생물학과)교수는 “이번에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항상 그 곳에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미검출 지역이 절대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며 “지속적인 점검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전체 정수장의 10%만을 대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나머지 지역 정수장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 지역 수돗물에 대한 정밀 추가 조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돗물 바이러스 논쟁에서 서울시로부터 한때 형사고발까지 당했던 김상종 교수는 “환경부는 이번에 서울을 뺐지만 세포배양법 및 유전자 검색을 통해 서울 관악구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수돗물의 60%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이후 바이러스 검사에서 원수는 21건 중 11건이 검출됐으나 가정의 수돗물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면서 “하루 10t 이상을 생산하는 서울시 9곳의 정수장은 98년 환경부 검사에서도 안전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경과 공해연구회 황순원 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바이러스 오염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해 왔다”면서 “차제에 현실을 공개하고 수돗물 끓여먹기를 홍보해 나가야 하며 진행중인 정수장 고도정수 처리 사업에 바이러스를 처리대상 목표로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인체 영향은▼

이번에 수돗물에서 검출된 아데노바이러스는 감기에 걸리게 하는 바이러스 중 하나. 1953년 미국에서 목안 뒤쪽 아데노이드라는 조직에서 발견됐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기를 통해 전염돼 목감기 등의 원인이 된다. 드물긴 하나 어린이에게 출혈 방광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별한 치료제가 없어 열이 나면 열을 낮추고 탈진하면 물을 많이 마시도록 하는 식의 대증요법으로 치료한다. 미국의 경우 군대 등 집단에서는 예방백신을 투여하기도 한다.

엔테로바이러스는 현재까지 4종이 발견됐다. 4종 가운데는 A형간염을 유발하는 것과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것 등이 있다. 엔테로는 ‘장(腸)’이라는 의미다.

오염된 대변 등을 만진 손이나 오염된 물과 음식 등을 통해 입으로 들어가 장에 침입하며 종류에 따라 A형간염, 소아마비, 뇌염, 수막염, 손발입병(수족구병), 급성 출혈 결막염(속칭 아폴로눈병), 호흡기질병을 일으킨다. 뾰족한 예방법이나 치료법이 없다.

아데노바이러스와 엔테로바이러스는 물을 끓여 마시면 안전하다. 전문가들은 “이들 바이러스는 주로 봄과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며 “예방을 위해 외출한 뒤 집에 돌아와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물과 음식 등은 끓여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진한기자·의사>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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