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성미 교수 '간송학파' 주장 공개 비판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56분


“‘진경시대(眞景時代)’라는 용어는 잘못됐다.”

미술사학자 이성미씨(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지인 ‘미술사학연구’ 227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진경시대’라는 용어가 잘못됐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교수의 글은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과 정옥자 서울대 교수 등 10여명이 공동 집필한 책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돌베개·1998년)에 대한 서평식 논문. 그동안 학계에서 비공식적으로 이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은 있으나 논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경시대’는 17세기말∼18세기를 일컫는 용어. 1985년 간송미술관에서 펴낸 학술지 ‘간송문화’에서 최 실장이 처음 사용한 ‘진경산수화’란 말에서 비롯됐다. 이 용어는 최근들어 역사학계나 미술사학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진경산수화’는 우리의 자연을 우리 시각에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7세기 말에서 18세기에 걸쳐 우리 문화가 그 이전의 ‘중국 베끼기’에서 벗어나, 조선 고유의 자주적 주체적인 특성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선 ‘진경’이라는 용어가 18세기 들어 현격하게 증가한 산수화의 한 유형일 뿐이며 당시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개념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진경산수화가 당시의 산수화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 제작된 전체 그림의 27%에 불과했다”면서 “진경산수화가 진경시대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일부 회화에 국한된 용어를 문화 전체로 확대 적용해 그 시대를 ‘진경시대’라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이 교수는 만약 이를 인정할 경우 “고려시대의 탈중국적 경향의 불교조각, 상감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창안해낸 고려청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최 실장의 진경시대 시대구분도 비판했다. 최 실장은 진경시대 125년간 중 숙종과 경종년간의 50년을 진경문화의 초창기로, 영조 재위 51년간을 절정기로, 정조 재위 21년간을 쇠퇴기로 보았다. 그러나 이 교수는 영조대보다 정조대의 문화가 더욱 융성했기에 정조시기를 쇠퇴기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 실장의 이러한 잘못이 기본적으로 겸재 정선이라는 한 인물에 너무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 ‘간송학파’라는 큰 그룹을 형성하면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최 실장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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