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 중세의 불교의례

  • 입력 2001년 3월 2일 19시 17분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김종명 지음/407쪽, 1만6000원/문학과지성사

“고려시대에 빈번히 개최됐던 불교의례는 ‘호국’의 기능을 담당했다고 할 수 없다.”

미국 UCLA의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수정 보완해 간행된 이 책의 주장은 고려시대 호국불교설의 일단을 뒤엎는다.

기존에 한국 불교학계에서는 고려의 불교의례가 왕권 강화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호국불교’의 이념을 뒷받침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서양의 불교학계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불교가 역사상 ‘호국’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고려에서 불교의례를 개최한 결과가 왕권 강화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고려의 불교의례들은 대부분 임금을 비롯한 왕실 중심의 불사였지만, 임금이나 왕실의 불교의례가 국가적 차원의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왕권 차원에서 볼 때 고려에서의 임금은 곧 국가를 의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려시대 불교의례들의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고, 그 의례들의 기능을 비판적 시각에서 규명했다.

그 결과 고려 시대의 불교의례는 정치적 수단, 임금의 축원과 왕실 제사의 불교적 표현, 그리고 임금의 정신적 위안 수단 등 세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임금의 정신적 위안과 왕실의 기복수단이었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부처의 자비심에 따라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치기 위해 불교의례를 행한다는 것은 단지 이론이었을 뿐, 실제 불교의례 개최의 목적은 임금이나 왕실의 세속적 욕망 달성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임금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차원의 사회 통합력과 정치력 강화의 역할은 그다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려의 임금들이 불교의례를 빈번하게 개최하고 있었을 때, 백성들의 삶은 그 의례들 때문에 더욱 어려워지기까지 했고, 이로 인해 고려에서 개최됐던 불교의례들이 호국 기능을 담당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현재도 한국불교계는 ‘호국불교’의 기치 아래 물량 위주의 불사를 벌이기 위해 많은 경비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고려 시대의 형식과 기복에 치우쳤던 불교의례 성행의 결과가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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