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대표작들, 대한생명 최전회장 반환뒤 창고속에 보관

  • 입력 2001년 2월 12일 18시 53분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화백의 예술혼이 담긴 ‘예수의 일생’ 시리즈 30점과 만년의 걸작 ‘걸레그림’ 등 그가 생전에 아끼던 대표작 200여점이 그의 사후 기구한 운명에 처해 있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운보는 자신이 아끼던 이 그림들을 팔지 않고 소장해왔으나 98년 10월 아들 완(完·52)씨가 사업실패로 최순영(崔淳永)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이형자(李馨子)씨 부부에게 이 그림들을 넘기게 되자 무척 서운해 했다는 후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씨 부부는 특히 ‘예수의 일생’ 등의 그림들에 큰 관심을 갖고 이 그림들을 사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씨는 대한생명 운영자금에서 60억원을 지불해 이 그림들을 사들여 집에 보관하면서 감상해왔으나 서류상으로는 대한생명의 유형 고정자산으로 등재돼 있었다.

최씨가 99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자 대생측은 최씨측으로부터 작품들을 반환받아 현재 회사에 보관 중. 이 그림들은 전적으로 대생측의 처분에 달려 있는 셈이다.

현재 공적 자금이 투입돼 기업경영개선 작업을 받고 있는 대생측은 돈이 아쉬워 그림을 팔겠다는 입장. 그래서 이 그림들은 조만간 누군가에게로 다시 한번 팔려가야할 신세다. 대생 관계자는 “운보 생존시 지난해 말 ‘예수의 일생’ 30점을 12억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나 20억원은 받아야 한다며 거절해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밝혀 거래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한편 운보의 가족과 제자 등은 그가 여생을 보낸 충북 청원 ‘운보의 집’ 근처의 ‘운향(雲鄕)미술관’을 5월 개관 목표로 ‘운보미술관’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으나 변변한 전시작품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운보 그림 70여점과 스케치 60여점, 도자기 20여점이 있으나 전성기 때의 대표작들은 아니어서 개인 미술관으로선 결정적인 문제라는 것.

㈜운보와 사람들의 김수봉 부사장은 “뜻있는 소장자들이 전시를 위해 임대해 주면 좋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얼마나 많은 소장자들이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미술계에서는 운보의 대표작들이 어두운 보험회사의 창고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 국민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전시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 김창실(金昌實) 대표는 “프랑스 정부가 피카소미술관 설립을 주도했듯이 우리도 정부가 나서 제대로 된 운보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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