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쌓기에 미친 '괴짜 교수님'

  • 입력 2001년 1월 28일 18시 44분


◇홍익대 조형학부 고승관 교수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한가지 일에만 몰입해 있다는 이유로.

12년째 화양계곡 인근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피거산(해발 375m)에 돌탑군(群)을 조성하고 있는 금속공예가이자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 조형학부 교수인 고승관(高承觀·57)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내와 헤어진 뒤 89년 이곳으로 이사온 그는 해마다 쓸쓸한 설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모처럼 작은 성취감으로 설을 맞았다. 그 동안 쌓아온 돌탑이 200기를 돌파했기 때문. 돌투성이 산으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았던 피거산은 이미 명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돌탑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 마이산의 경우 120여기 중 80여기만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과 비교하면 피거산 돌탑들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고 교수의 돌탑들은 기원을 담아 돌 몇 개를 얹어놓은 작은 ‘소원탑’ 수준이 아니다. 땅속 60∼70㎝에서부터 시작해 지상 2∼7m까지 쌓아 올렸다. 공법도 정교해 그동안 여러번 태풍에 시달렸지만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모양도 첨성대 성황당 맥주병 3층탑 소나무 등 저마다 다르다. 자살한 동네 총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남근 모양의 돌탑도 있다. 고 교수는 모양과 구도가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공들여 쌓은 탑을 헐어버리는 결벽증을 갖고 있다. 93년부터는 타임캡슐 개념을 적용해 돌탑 안에 명사나 지인들의 메시지와 소지품 등을 넣었다. 이 메시지 등은 100년 뒤 공개토록 했다.

고 교수는 돌탑에 자신의 전부를 던진다. 매주 강의시간 9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이 산에서 보낸다. 돌탑 10여기를 혼자 쌓은 후부터는 하루 평균 4, 5명의 인부를 동원해 돌탑을 쌓느라 월급봉투도 모두 턴다. 월급만으로 인건비 충당이 어렵자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공예 작품도 50여점이나 팔았다.

인부들은 종종 “우리는 돈을 벌어 좋지만 교수님은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산 아래로 흐르는 박대천을 내려다 보며 조용히 웃는다. “시공(時空)은 우주의 근원이요, 만물의 바탕이다. 시공의 비밀이 풀릴 때 나의 수수께끼는 풀릴 것이다.” 이처럼 선사(禪師)같은 말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돌탑들은 자신의 직업인 공예가로서 필생의 역작(力作)이다. 그가 만들어온 기존 작품들이 공예작품인 반면 이 돌탑들은 대자연을 무대로 한 점이 다를 뿐이다. 또 그의 머리 속에는 한 장의 그림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우선 1차 목표는 돌탑 500기를 완성해 국내 최대의 탑골공원을 만드는 것. 그 후 산 중턱에는 가로 100m 세로 30m 가량의 대형 벽화를, 정상에는 조지 워싱턴 등을 조각해 놓은 미국의 마운트 러시모어와 같은 조각상을 조성하고 주변에 현대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지어 산 전체를 거대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예술촌이 없어요. 중앙과 지방의 문화예술 격차도 너무 심하구요. 계획대로만 된다면 두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요. 우연인지 몰라도 도원리(桃源里)와 인접한 마을은 무릉리(武陵里)예요. 결국 문화예술의 ‘무릉도원’이 이곳에 만들어지는 셈이지요.”

고 교수는 “내 생전에 이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면 제자들이라도 이어받아 완성할 수 있도록 유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돌탑 200기 조성을 기념해 올해 음력 정월 대보름(2월 7일)으로 10회를 맞는 ‘도원성 문화제’를 대대적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 행사는 고 교수 개인이 제자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치르는 문화제이다.

<괴산〓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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