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바다의 노래, 땅의 노래

  • 입력 2001년 1월 19일 18시 59분


◇저자는 말한다 : ‘바다의 노래, 땅의 노래’ 장철수

아직도 저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1997년 12월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제주 성산포 앞바다로 향했던 ‘발해 1300호’ 뗏목 탐사대장 장철수입니다.

바람과 해류만 의지해 1300년 전 발해의 뱃길을 탐사하던 저희 대원 4명은 항해 24일만에 혹한의 동해 바다 어느 곳에 뜨거운 젊음을 묻었지요.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추모사업회 ‘철수생각’)이 사고 3주기를 맞아 제 유고집을 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준비과정과 항해일지, 그리고 여러 지면에 실었던 제 졸고가 추려져 있습니다.

책을 보시면 한일 정부의 눈총을 받아가며 제가 죽음을 무릎쓰고 뗏목 탐사에 오른 이유를 소상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해류를 통한 해상활동을 증명함으로써 발해사를 복원하는데 기여하려는 학술적인 바람과, 발해의 정통성을 확인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는데 일조하고픈 현실적인 희망이 우리 탐사의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울 삭풍에도 굴하지 않을 강한 의지로 무장했던 대원들에게도 2500여리의 뗏목 항해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항해일지’에 적었듯이 눈보라치는 혹한과 발광하는 파도와의 대결은 사투 그 자체였습니다. 악다귀를 써가며 모든 것은 동물적인 생존의식으로 버텨야 하는 칠흑같은 고독의 시간들. 비록 실패했으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최후까지 지켰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1980년대부터 10년이 넘도록 독도 지킴이 운동을 외롭게 벌여왔습니다. 기록문화가로서 1988년 9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독도가 보인다는 선조의 기록을 증명하려고 독도 인근에서 뗏목 시위를 벌여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죽도’로, 동해를 ‘일본해’라고 생떼를 쓰고 멋도 모르는 외국이 이를 인정하는 것을 단호하게 막고 싶었습니다. ‘항일주의자’라고 몰아세우는 이도 있지만 구겨진 역사를 바로 펴는 것이 쇼비니즘과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경남 통영의 동향 어른이신 고(故) 윤이상 선생과 독도에서 평화음악제를 개최하고자 한 것도 세계 만방에 이 곳을 대한의 땅으로 선포하고자 했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라졌지만 이 땅의 청년들에게 바랍니다. 자유와 낭만,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조국의 통일과 삶의 풍요를 위한 꿈을 갖기를, 넓은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인과 바다를 정복했던 발해인의 후손이란 긍지를 갖기를. 그렇다면 제 죽음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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