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53분


◇내가 요즘 읽는 책-한명기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덕을 많이 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절제와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德)은 ‘득(得)’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따라서 덕을 쌓은 사람이란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평범한 개인이든,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인이든, 덕을 쌓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중국의 고전에서는 ‘덕을 갖춘 사람(有德者)’에게만 천명(天命)이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로이드 이스트만의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지식산업사·1986)는 뒷 표지 사진부터 독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1949년 10월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 선포식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는 마오쩌뚱(毛澤東)의 모습과 침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떨구기 직전인 장졔스(蔣介石)의 얼굴이 너무 대조적이다. 전형적인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다.

한 사람은 10억 중국인의 ‘마음을 얻어’ 중원(中原)을 차지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을 잃어’ 대만으로 쫓겨가야 했다.

마오쩌뚱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저자는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장졔스의 국민당이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고 말한다. 공산당군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병력, 월등한 재정 기반, 거기에 미국의 막대한 군사 지원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국민당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치르면서 피폐해져 있던 국민들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파벌 사이의 다툼과 부패, 민주적이지 못한 의사 전달 체계 때문에 망하는 순간까지도 민심이 떠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 책에는 마오쩌뚱의 병사들이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상하이의 도로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민폐에 개의치 않았던 장졔스 군대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가 대륙에서 패퇴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백성들과 손을 맞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국민당 고위 간부가 대만으로 쫓겨온 다음에야 되뇌인 말이다. 그것을 진작 깨닫고, 진정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시도했다면?

눈을 돌려 우리 현실을 보자. 새해를 맞아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언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수많은 민초들의 마음을 얻어내기는커녕,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그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신문의 정치면을 펼칠 때마다 눈물을 떨구기 직전의 장졔스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규장각 특별연구원·‘광해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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