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마스터 라우크트 "어린 백조들아 발을 쭉 뻗어봐"

  • 입력 2000년 8월 2일 21시 12분


“5번 자세, 이렇게∼.”

1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초등학교 5, 6학년으로 구성된 ‘발레 예비학교’에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발레리노를 꿈꾸는 ‘어린 백조’ 10여명이 아직 가냘프게 보이는 팔을 뻗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덩달아 푸른 눈, 큰 키의 ‘선생님 백조’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세를 교정해 주느라 바쁘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발레 마스터(Master) 유셉 라우크트(46). 키예프 발레단 등에서 22년간 주역 무용수로 활동한 그는 93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안무가와 발레 마스터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초청을 받아 발레리나 강수진을 지도하기도 했다.

라우크트는 “강수진은 특히 드라마틱한 연기력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세계 춤 2000―서울’의 ‘마스터 클래스’와 예비학교 강습을 통해 제2, 제3의 강수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한국 발레의 잠재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청일점 강민우군(11)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과 발레 동작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며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진출한 ‘김용걸 아저씨’같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3월 에스토니아발레콩쿠르의 11∼13세 부문에서 동상을 받은 왕지원양(13)은 최근 끝난 ‘세계 발레스타 초청 대공연’을 보고 우상이 바뀌었다. 그는 “(강)수진이 언니도 여전히 좋지만 줄리 켄트, 유안유안탠같은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연습장을 찾은 한 학부모. “가끔 억지로 ‘몸을 찢어가며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안쓰럽지만 아이들의 열성이 대단하다. 발레를 시작한 뒤 아이의 자세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성격도 밝아졌다.”

90년대이후 불기 시작한 한국 발레 붐은 라우크트가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 현재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직업 발레단에서 예비학교를 열고 있다. 국립발레단측은 서울 경기 지역의 경우 발레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70여곳, 한국무용을 함께 강습하는 학원은 2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 발레 입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까? 라우크트의 답변은 단호한 ‘No’.

발레를 너무 일찍 시작할 경우 골격이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체형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그는 “발레학교로 유명한 러시아 바가노프 스쿨은 대개 8, 9세때 발레 훈련을 시작한다”면서 “이전에는 음악 교육이나 신체 발육에 도움이 되는 다른 운동을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들이 토슈즈에 대해 갖는 환상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 1년이상 몸의 힘을 분산시키는 훈련을 받고 토슈즈를 신지 않으면 심한 경우 발모양이 기형이 되거나 좋은 다리 선(線)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 주역 김주원은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였다 12살 때 발레를 시작했고 이원국은 고교 2학년때 입문했다. 부산 출신인 김용걸은 “머스마가 우째 타이즈를 신노”라며 거부하다 중학 3학년때 발레를 접했다.

4일 한국을 떠나는 라우크트는 “무엇보다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나쁜 자세 때문에 잦은 부상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좋은 스승 △클래식 등 음악 교육 △매일 연습하기 △다양한 형태의 ‘공연 실습’ 등을 발레 꿈나무들을 튼튼하게 키우기 위한 조건으로 꼽았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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