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이 달라졌네"… 요란한 재즈는 가고 한잔 술과 대화

  • 입력 1999년 12월 13일 19시 56분


세련된 도시남녀, 3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찾는 거리. 와인 재즈 퓨전푸드로 대표되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 재즈에서 바로 ▼

‘홍대 앞에 재즈클럽이 있다면 청담동엔 바(Bar)가 있다.’

바텐더와 손님 사이에 길다란 바가 있는 술집, 바. 장식없는 단순한 인테리어에 어두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청담동 음주문화의 대표격으로 꼽히던 현란한 조명의 재즈클럽과 딴판이다. ‘야누스’ ‘원스 인 어 블루문’ ‘플레이 더 블루스’가 청담동의 3대 재즈클럽이었다면 지난해 문을 연 ‘틈’과 ‘지직스’, 올해 7월과 10월에 각각 개점한 ‘바바’ ‘물 바’가 청담동 바 문화의 선두로 꼽힌다.

술병을 쌓아가며 시끌벅쩍하게 마시던 데서 ‘한잔과 담소’로의 조용한 전환. 술도 와인이나 외제맥주 대신 진 보드카 럼 데킬라 등 하드 알코올(Hard Alcohol)이 인기다. 특별한 장르는 없지만 잔잔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조용한 음악이 주로 흘러나온다.

“다양한 외국문화를 접한 계층이 점점 많아지면서 ‘부어라 마셔라’식 음주문화 대신 가볍게 술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원하는 부류가 많아졌다.” ‘바바’의 실내장식을 디자인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씨의 분석.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N씨(31)가 자주 찾는 ‘물 바’는 오래된 피아노와 벽난로, 메탈벽과 좁은 공간이 마치 30년대 미국 금주시대의 마피아 아지트를 연상시킨다. 바로 옆자리 손님의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의 어두운 실내. 술은 보드카 ‘앱솔루트’나 데킬라 ‘후세 쿠엘보’를 주로 마신다.

▼ 멋에서 맛으로 ▼

동서양 음식을 아우른 퓨전푸드 음식점으로 가득찼던 이 곳에 순수한 ‘정통의 맛’을 내건 음식점이 올들어 잇따라 생겨났다.

정통 프랑스식을 내건 ‘테이스트빈’이나 고급이탈리아 레스토랑 ‘본뽀스또’가 대표적인 곳.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 지방의 시골음식을 표방한 ‘안나비니’와 중식당 ‘이닝’, 그리고 일본식 라면집 ‘규슈라멘’도 인기 절정이다. 정통 한식당 ‘쉐봉’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전설속에서나 맛볼 수 있는 중식’임을 내건 중국요리점 ‘파진’이 개점했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신성순씨는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손님이 몰리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맛을 바탕으로 독특한 주제가 있는 인테리어를 결합시킨 음식점이 통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 유행구역의 변화 ▼

바와 정통음식점으로 대표되는 청담동의 ‘유행 구역’이 A→B→C, C'로 옮겨가고 있다.

상류에 속하는 사회계층은 자신들만의 ‘특별함’을 통해 다른 계층과의 차별성을 추구한다. 중산층이 자신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이를 모방하게 되면 그들은 이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A지역의 음식점 카페 등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로 이미 주차공간이 비좁을 만큼 포화상태. B지역에 자리잡은 음식점은 건물 2,3층을 한꺼번에 쓰는 A지역과 달리 30여평 규모에 조그만 테이블이 붙어있다. 메뉴의 가지수도 적고 인테리어도 패션의 유행인 미니멀리즘에 맞춰 지극히 단순하다. C와 C'지역으로 이동은 새로운 공간을 찾다보니 생긴 현상. 빌딩보다 주택을 개조한 곳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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