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보다 자유스러운 것에 號(호)가 있다. 일종의 별명으로 성격이나 특징, 嗜好(기호), 거주지, 관직 등을 사용해 친구나 스승이 지어 주었다. 스스로 짓는 경우에는 自號(자호)라고 했다.
陶淵明(도연명·372∼427)의 이름은 潛(잠), 字는 淵明이다. 여기서도 潛(잠기다)과 淵(연못)이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다 하여 自號를 五柳先生(오류선생)으로 삼았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字를 사용했는데 薛聰(설총)의 字가 聰智(총지)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도 중국처럼 통용되거나 엄격하지도 않았다. 李滉(이황)은 字가 景浩(경호)인데 滉이나 景浩는 모두 물이 깊고 넓은 것을 뜻한다. 字보다는 號나 諡號(시호)를 즐겨 사용했다. 李滉의 號는 退溪(퇴계)이며 李舜臣(이순신)의 字는 汝諧(여해)이지만 諡號인 忠武公(충무공)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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