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가 흐르는 漢字]字號(자호)

  • 입력 1999년 12월 7일 18시 29분


옛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관습상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꺼렸다. 부자나 사제간이 아니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친구간에도 그랬다. 이미 ‘慶弔事’(7월12일자)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옛날 남자는 20세에 冠禮(관례)를, 여자는 15세에 계례를 행하면서 상투를 틀어 올리고 쪽찌고 비녀를 꽂게 된다. 지금의 成年式(성년식)에 해당된다. 字는 이 때 받는다. 字는 (면·집)과 子(아기)의 결합으로 아기가 방에서 자고 있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아기는 잘도 자라므로 본디 字는 ‘불어나다’는 뜻이었다. 과연 字는 名(이름)에서 뻗어나온 것으로 반드시 이름과 관계가 있는 글자로 지었다. 諸葛亮(제갈량)은 이름이 亮, 字가 孔明(공명)이다. 亮과 明은 모두 ‘밝다’라는 뜻이 있다.

字보다 자유스러운 것에 號(호)가 있다. 일종의 별명으로 성격이나 특징, 嗜好(기호), 거주지, 관직 등을 사용해 친구나 스승이 지어 주었다. 스스로 짓는 경우에는 自號(자호)라고 했다.

陶淵明(도연명·372∼427)의 이름은 潛(잠), 字는 淵明이다. 여기서도 潛(잠기다)과 淵(연못)이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다 하여 自號를 五柳先生(오류선생)으로 삼았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字를 사용했는데 薛聰(설총)의 字가 聰智(총지)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도 중국처럼 통용되거나 엄격하지도 않았다. 李滉(이황)은 字가 景浩(경호)인데 滉이나 景浩는 모두 물이 깊고 넓은 것을 뜻한다. 字보다는 號나 諡號(시호)를 즐겨 사용했다. 李滉의 號는 退溪(퇴계)이며 李舜臣(이순신)의 字는 汝諧(여해)이지만 諡號인 忠武公(충무공)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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