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지역 주부, 무리말고 남편-친지에 도움청하라”

  • 입력 1999년 8월 15일 18시 45분


쓸고 닦고 씻고 훔치고….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 사는 유영희씨(36). 걸레질 빨래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평소에도 온몸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요즘엔 수해에 ‘절은’ 살림살이와 아수라장이 된 집안 구석구석을 보기만 해도 온몸이 쑤신다.

“물 속에서 건진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진흙을 떨어내고 정리해야할 것은 산더미입니다. 도배도 해야 하고 집정리도 해야 하고… 없어지거나 못쓰게 된 것은 사다 채워 넣어야 하고….”

응급복구 작업이 마무리돼가고 있는 수해지역에 ‘여자의 할 일’이 쌓여가고 있다. 남편은 ‘복구휴가’가 끝나 일터로 나갔지만 각 가정의 뒷정리는 주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김광자씨(58)는 “아들과 사위가 복구작업을 대강 끝내고 서울로 올라갔다”며 “이제 버릴 것은 버리고 쓸 것은 챙겨놔야 하는데 남편이 도와주기는 커녕 잔소리만 한다”고 푸념했다.

96년에도 수해를 입었던 김씨는 “대강 집안정리를 마치니 곧바로 추석”이더라며 “그때 무리해선지 지금도 허리와 무릎이 아파 고생한다”고 덧붙였다.

수해지역에서 의료봉사를 한 서울 내외한의원 이은미원장은 “연거푸 수해를 입은 주부들 중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에 화병을 호소하거나 쪼그려 앉아 일하느라 온몸이 아프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의사들과 한의대생으로 이뤄진 사암한방의료봉사단에 따르면 봉사단을 찾는 환자는 퇴행성 질환이 악화된 노인 다음으로 주부들의 숫자가 많다. 대부분 무릎통증 근육통 견비통 요통 화병 피부병을 호소하며 수해가 끝난 뒤에도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다는 것.

수해를 겪어본 주부들은 “집안 정리를 주부 혼자 다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경기 주부교실 연천지회 김명옥 지회장은 “96년 수해 때 회원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몇개월씩 걸릴 집안정리를 한달만에 끝낼 수 있었다”며 “적극적으로 친지나 남편의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또 한꺼번에 하지 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는 한편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 특히 주부가 습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할 경우 부인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주의한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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