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주作「콰이강의 다리」, 징용한인들 위한 진혼

  • 입력 1999년 8월 10일 19시 31분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보셨나요. 연합군 포로들에 동정을 보내며 일본군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겠죠. 그렇지만 영화에 묘사된 일본인 대부분은 사실 조선인이었습니다.”

최근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를 펴낸 소설가 정동주(52)의 말.

그가 소설을 쓴 것은 다리공사에 투입됐던 한국인 홍종묵씨를 92년 일본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홍씨는 42년부터 일본 패전때까지 미얀마 태국 접경의 철도건설공사에서 노역했던 인물.

정동주는 홍씨를 만난 뒤 그의 메모를 토대로 이 공사에서 일했던 한국인 문제를 깊이 연구해왔다.

홍씨가 밝힌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다. 42년 조선 전역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선인 3000명이 군속으로 징용됐고, 이중 영어를 가장 잘 하는 300명이 콰이강 다리 공사현장인 제4포로수용소에 배치돼 연합군 포로들의 관리와 통역을 담당했다는 것. 일본군이 패전한 뒤 이들은 모두 전범혐의로 체포돼 24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은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비인도적 행위의 대부분을 한국인 군속들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단지 식민지 청년으로 태어났다는 죄 때문에 수십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죠.”

소설의 주인공인 홍종묵(소설속 이름 김덕기)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포로였던 영국인 의사의 호의적인 증언으로 유일하게 석방됐다. 홍씨는 그후 일본에 거주하다 최근 세상을 떠났다고 정씨는 밝혔다.

“세계대전을 통해 약소민족이 입은 상처는 단지 물질이나 인명의 손실 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지우지 됐다는 모욕감, 자존심의 상처가 더 크죠.”

정씨는 20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식민지 체험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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