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없는 3X6세대『우리도「피부투쟁」서 컸다』

  • 입력 1999년 5월 23일 19시 58분


《30대, 60년대 출생, 그러나 ‘학번’이 없는 ‘3X6세대’. 조기유학자이거나 외국 국적인 이들은 암울한 시대에 생긴 ‘끈끈한 정’으로 뭉친 ‘386세대’와는 다른 정서를 가진 30대 X세대. 90년대 들어 해외 현지인력으로 채용됐거나 국내기업에 입사함으로써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떼거리즘’코카콜라보틀링 마케팅실의 김한성씨(30). 고교를 졸업하고 스위스의 호텔경영전문학교인 ‘세자 리츠’에 입학. 95년 졸업과 함께 S그룹에 특채돼 서울로 발령이 났다.

동료 사이에 “우리 고생할 때 편하게 공부한 애들이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회의 시간에 말이 많고 간부를 복도에서 만나면 친한 친구처럼 인사하는 ‘외국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회의시간에 말을 아꼈다. 영문서류에 오류가 있어도 침묵했다. 술자리에 끝까지 남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함께 채용된 해외파 8명 중 3명은 1년안에 회사를 떠났다.

직장을 옮긴 것은 3월.“전직장에서는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며 ‘팀웍’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개인주의 조직인 외국계 기업이 ‘3X6정서’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나! ▼

삼성경제연구소의 박재광연구원(33). 11세에 미국으로 가 대학원까지 마친 그도 ‘회의를 주도하고’ 간부를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며 늘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3X6’. 박연구원은 “튀는 게 용서되는 직장이기도 하지만 미국국적이라 동료들이 이해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직장이든 열정을 숨길 이유가 없고, 직장이 나를 거부해도 언제든 미국에 더 좋은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개의치 않는다”고 설명.

▼투쟁∼투쟁! ▼

경희대 88학번인 골드투어의 이봉재이사(32). “실력보다 인간관계 위주로 사는 ‘386’과 몸에 밴 서구적 정서에 세계를 만만하게 보는 배짱, 실력을 갖춘 ‘3X6’은 게임이 안된다. 밤마다 영어학원에 다니는 ‘386’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부모 잘 만나서’라는 따가운 시선속에 타향살이를 한 ‘3X6’. 현지인과 진도를 맞추기 위해 김한성씨는 1주일에 3시간밖에 자지 못한 적이 많다. 박연구원은 백인 흑인 유태인학교로 3차례 전학을 다니며 매번 다른 인종을 친구로 만들어야 했다. 고교 졸업후 일본 도쿄모드에서 패션스타일링을 공부한 우노크리에션의 손지희실장(31·여)은 일본 회사에 채용됐다. 서류를 갖춰 일본으로 간 손씨는 “공부 끝났으면 가지 왜 일본돈을 벌려 드느냐, 한국 가서 얼굴 값이나 해라”는 일본 출입국관리국 직원의 얼굴에 준비해 간 서류를 찢어 던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다른 차원의 ‘투쟁’속에 성숙한 이들을 ‘386’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3X6’은 현지취직을 선택하거나 외국계회사 건축 패션 등 일부 전문직종에 몰려있다.

▼글로벌3X6 ▼

프랑스 요리학교 코르동블루 출신 ‘3X6’인 송희라씨(32)는 “일은 곧 놀이이며 놀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30대지만 생각은 X세대인 ‘3X6’은 조직에 대한 충성, ‘끈끈한 정’과 거리가 멀다. 신나는 일을 찾아 늘 떠날 준비가 돼 있다. 대졸 해외파인 헤드헌팅업체 드림서치의 이기대사장(36). “대학을 나온뒤 유학한 나의 학위에는 지식만 담겨 있지만 현지인과 경쟁하며 교양과정을 배운 ‘3X6’의 머리에는 그들의 문화가 담겨 있다. ‘3X6’의 이력서를 받을 때가 가장 즐겁다. 이들을 외국계회사에만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늘 고민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시대를 맞아 무역장벽 등 갖가지 장벽이 허물어지면 ‘우물 밖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은 X세대와 ‘3X6’, 초인적 노력으로 변신에 성공한 ‘386’뿐이라는 것이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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