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강충모씨『바흐 건반현악기 전곡연주 목표』

  • 입력 1999년 4월 18일 20시 37분


피아니스트 강충모(39·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연주중 머리를 흔드는 버릇을 없앴다. “머릿속에 붙어있는 음표가 떨어져나갈 것 같아서요.”

매일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악보를 외운다. 바흐의 건반현악기(클라비어)작품 전곡 연주. 그가 앞으로 5년동안 열번의 콘서트에서 펼쳐나갈 과제다. 첫순서로 20일 영산아트홀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파르티타’ 전 6곡이 첫 레퍼토리.

왜 바흐인가. “음악도 건축물처럼 문화권마다 일정한 구조를 갖추고 있죠. 그의 음악에는 엄정한 화성(和聲), 풍요한 선율 등 오늘날의 서양음악을 만든 기본구조가 들어있어요.” 강교수의 바흐론(論).

“밀레니엄을 마감하는 금년에 그를 정리해보는 연주회를 시작하고 싶었지요. 내년은 그가 사망한지 4반 밀레니엄(2백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바흐 악보 외우기는 머리를 흔들지 못할 만큼 어렵다. 우선 ‘길다’. 파르티타 악보만 1백8페이지다.

그런데도 굳이 외워 연주하겠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악보를 읽어가면서 순간순간 필요한 표현을 펼쳐낼 만큼 대가가 못되거든요.”

단지 길어서 힘든 것은 아니다. 바흐의 시대는 각 성부(聲部)가 독립적 지위를 누리던 대위법(對位法)음악의 절정기. 왼손과 오른손이 다른 노래를 읊고, 또 다른 노래가 두 손을 옮겨다니는 식이다. 한 선율에 정신을 집중하다가는 나머지 선율들이 흐름을 잃기 일쑤다.

그가 모범으로 삼는 바흐 연주자는 글렌 굴드와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 “굴드는 각 선율을 철저히 독립시켜 펼칩니다. 정교하죠. 반면 리히테르는 서정미와 순수함을 갖고 있어요.”

가능한 한 양쪽의 장점을 살려보겠다는 계획이다. “굳이 ‘강충모식 바흐’를 만드는게 목표는 아니예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연주를 선보이겠습니다.”

강교수의 이력은 남다르다. 미국의 명문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과정 이수중 교수로 특채됐다. 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때 이강숙총장의 밤샘 설득에 ‘넘어가’ 귀국 비행기를 탔다.“92년 강선생이 일시귀국해 독주회를 했죠. 해석의 깊이나 섬세함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어요. ‘이런 피아니스트가 있었구나’하고 무릎을 쳤죠.” 이강숙 총장의 회상.

동료교수 임종필(피아니스트)은 “어떤 시대 어떤 작곡가를 연주하던 지 작품의 특징을 가장 정확히 집어내는 최상의 해석가”라고 강교수를 격찬한다. 김남윤교수(바이올리니스트)도 “생각이 깊은 연주자예요. 악보의 이면까지 들여다보고 섬세한 연주를 펼칩니다”라고 그를 평했다. 02―598―8277(스테이지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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