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화염속의 천사」 국내초연 논란

  • 입력 1999년 4월 11일 19시 42분


작곡가 고 윤이상의 관현악곡 ‘화염속의 천사’ 국내초연을 앞두고 음악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화염속의 천사’는 91년 한국내 운동권 연속분신 사건을 소재로 윤이상이 95년 작곡 발표한 작품.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마지막 공연인 26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정치용(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교수)지휘로 한국초연된다.

음악계에서는 “아직 우리사회의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연주는 시기상조”라는 반대의견과 “윤이상의 작품은 순음악적인 면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유보론, “이 작품 초연은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찬성론이 맞서있는 상태.

작품 연주를 결정하고 지휘를 맡은 정치용 교수는 “윤이상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이라는 의미를 감안해 연주를 결정했다”며 “선동적 성격을 띤 작품이 아니며, 민주화 과정에서 숨진 청년들에 대한 슬픔과 추모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연속분신사태는 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에서 발단됐다.

안동대 김영균, 경원대 천세용, 전남대 박승희 등 전국에서 학생들의 항의분신이 잇따랐다.

당시 시인 김지하는 신문 기고문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운동권을 공격했고 박홍 서강대총장은 ‘죽음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화염 속의 천사’는 95년 일본 도쿄 필하모니 연주회에서 처음 연주되었고 이번이 두번째다.

작품은 밝은 학원생활에 대한 묘사로 시작돼 학생들의 내면적인 갈등과 분신에 이르는 과정이 대규모 관현악으로 표현됐다.

◆ 문화계 찬반논란

▽김용진(한국음악협회장)〓91년 운동권 분신사태는 아직 우리사회 내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 사건을 다룬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사회 분위기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탁계석(21세기문화광장 대표)〓지금은 윤이상에 대한 정치적 평가보다 그의 예술이 가진 순수한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급선무다. 정치색을 배제한 뛰어난 순음악 작품이 먼저 소개돼야 한다.

▽박인배(민예총 기획실장)〓시기상조가 아니라 때늦은 연주다. 사회적 사건에 대해 예술가가 발언하는 것은 그의 권리다. 윤이상은 칸타타 ‘광주여 영원히’등을 통해 시대참여적 입장을 명백히 했다.

▽문호근(예술의전당 예술감독)〓연주곡목을 선택하는 것은 연주단체의 고유권한이다. 윤이상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졌던 정신과 입장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 윤이상이 밝힌 창작의도

91년 봄 한국에서 민주화와 민족통일 투쟁이 봉쇄되자 많은 젊은이들이 불같은 애국심으로 죽음의 길을 갔다. 나는 음악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기념하고자 했다.

분신자살은 2차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아시아 전체의 세력균형은 강대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리잡혔다. 여러 나라가 괴로움을 받았다. 따라서 나의 작품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여러 나라를 위한 것이다.

젊은 생명을 바친 학생들의 행동이 작품의 주제이지만 내가 이 작품으로 정치적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평화와 마음의 자유를 높이 받드는 사람들 전부를 위해 나는 이 작품을 썼다.

작품은 전 3부로 되어있다. 3부에서 학생들은 몸에 불을 당기고 화염에 싸여간다. 불의에 대한 항의와 자유에의 호소가 최고조에 달한 뒤 점차 불은 꺼지고 참극은 끝을 고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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