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씨, 세번째 장편소설「기차는 7시에~」펴내

  • 입력 1999년 2월 23일 19시 01분


작가 신경숙(36)이 세번째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 지성사)를 펴냈다. 앞선 장편 ‘외딴방’이후 3년4개월만이다. 오랫만의 신작이어서일까. 18일 서점가에 초판 3만부를 내놓았던 출판사는 쏟아지는 주문 때문에 나흘만에 추가로 7만부를 더 인쇄해야했다.

‘기차…’의 출간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지난해 여름. 그러나 작가는 컴퓨터 앞에서 망연히 두 계절을 흘려보냈다.

가슴을 누르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부박한 90년대말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설이 무엇일 수 있는가. 돌연한 운명의 타격에 종이조각처럼 구겨지거나 소멸하는 힘없는 존재들을 위해…. 어렵게 마침표를 찍은 지금 그는 “소설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만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이 작품을 통해 삶으로나 작품으로나 한 시기를 매듭지었나.

“글쎄. 어떤 답을 얻었다기보다는 ‘재구성’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기차…’의 등장 인물들은 뭔가 어긋나버린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사람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는 순례자들이지 않은가.”

―주인공은 청춘의 한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15년이 지나서 뒤늦게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해간다는 설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에게나 너무 아파서 아예 잊어버리고 싶은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청춘 시절의 깊은 상처는 더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웠던 청춘의 한 때를 할퀴고 지나간 상처의 치유없이 생생한 삶은 살아지지 않는다는게 내 생각이다. 실물감있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적인 실연이든 시대적인 아픔이든 가슴 속에 옹이처럼 박힌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 정면대결을 피하면 늘 순간순간을 모면하듯이 살게 된다.”

―주인공이 80년대를 상처로 안고 있어서인지 그 시대가 반추된다. 특별히 ‘80년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

“나 자신이 80년대라는 ‘폭풍의 연대’를 지나온 세대이다보니 생각의 파장이 그쪽으로 향한 것 같다. 나는 80년대가 실패나 상처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켜보려고 자신을 던질 줄 알았던 세대였다. 그 노력이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무엇을 하자”는 말을 생전 하지 않던 작가가 이번작품에서는적극적으로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의지를 보인다. 작가로서 큰 변화인 것 같은데.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인데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외로운데도 서로 등돌린 채 살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타인에게 손도 내밀지 못하는 것이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고립된 개인들간의 소통, 서로 낯설어하는 세대와 세대간의 접속, 잃어버린 친밀성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소설의 밑재료가 되어주었다.”

―‘친밀성의 회복’이란 아름답지만 추상적인 말 아닌가.

“그렇지 않다. 소설속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며 매일밤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생면부지의 여자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실제 경험한 일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건성으로 응하다가 차츰그 곡진(曲盡)한 슬픔에 내가 진지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었다. 그러다보니 얼굴도 모른채 우정 같은게 싹텄다. 아주 사소한 배려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큰 울림을 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오래된 연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서른다섯의 여자성우 하진. 그러나 사랑하면서도 선뜻 결혼을 약속하지 못한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과거가 그를 자꾸 멈칫거리게 하는 것. 하진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잃어버린 스무살 무렵의 기억을 찾아나선다. 단서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한장의 낡은 사진.

그 막연한 여행의 동행자는 스무살의 조카 미란이다. 연인의 배신에 상심해 자살을 기도했던 미란은 하진처럼 기억 일부를 잃어버렸다.

하진의 기억은 독산동 구로공단 뉴질랜드를 거쳐 마침내 제주도에서 그가 한때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오롯이 복원되는데….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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