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는 들러리가 아니다』…「그림보다…」展 눈길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8시 43분


그림보다 액자를 보라고?

금호미술관(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개관 9주년 기념전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

전시된 1백여점이 모두 그림을 보는 기존의 시선을 비틀라고 주장한다.

액자를 먼저! 액자 자체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의 소재라는 것.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런 저런 모양의 액자가 흥미롭기만 하다.

김홍주씨의 작품.유리창 너머의 남자를 그렸다. 오래된 나무 창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그안에 그림을 그렸다. 창틀이 액자이자 작품인 셈. 그는 70년대부터 일상 사물의 틀을 이용해 작업해왔다.

이중재씨는 커튼을 영화 자막처럼 드리워놓고 프로젝터를 이용해 여인의 화장하는 모습을 투사했다. 이쯤되면 어디까지가 틀이고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김지원씨의 ‘구석에서’는 그림속에 사각형 틀이 이어진다. ‘틀 안의 틀’또는 ‘틀 밖의 틀’로 액자가 곧 경계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안미영씨의 ‘마이더스의 손’은 캔버스 좌우에 커튼을 드리워 틀을 만들었다.

김해민씨의 비디오작품 ‘망치’는 아예 망치로 틀을 깨뜨리고 있고 정광호씨의 설치작업은 틀의 실종을 강조했다.

배준성씨는 원로 작가들의 그림을 슬라이드에 인화해 전시, 사각의 틀안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한국 고유의 틀을 이용한 작품도 많다. 두루마리나 족자, 부채 등 한국의 틀은 주변과의 조화를 강조한다. 외부와 분리를 강조하는 서구 르네상스시대의 ‘황금액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허구용씨는 우리 전통의 병풍에 추상화를 그렸고 김동유씨는 6백호 크기의 대작을 부채살처럼 펼쳤다. 이수경씨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정선의 금강전도를 좌우로 잡아당겼다. 여기서 틀은 금강전도.이같은 ‘틀 다시보기’는 아직은 낯설다. 막상 전시 작품을 대하면 틀을 먼저 보기가 쉽지 않다.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전은 그 틀을 깨자고 한다.

전시는 호응을 얻어 한달 연장됐다. 1월31일까지. 02―720―5114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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