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건축문화에도 「금기」…건물외곽선 경사 NO!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3분


‘건축’과 ‘터부’.

당대의 과학과 기술, 거기에 예술사조까지 총망라되는 건축. 거기에 ‘터부’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건축문화에는 특유의 터부가 엄연히 존재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4층’표시. ‘4’와 ‘사(死)’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단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4층〓사층(死層)’으로 인식된 것. 때문에 대부분 건물의 4층은 5층이나 F층으로 표시된다. 엘리베이터의 각층 표시에도 마찬가지로 3층에서 5층으로 건너뛰는 경우가 대부분. 계단표시도 마찬가지다.

건물의 외곽선이 한쪽으로 경사진 건물도 기피대상이다. 사선의 ‘기운다’는 이미지가 사업이나 가세도 기운다는 쪽으로 확대된 탓. 서울 용산구의 전 국제상사 빌딩이 대표적인 예다. 독특한 외형으로 준공 당시에는 디자인이 신선하다는 찬사를 받던 이 건물. 그러나 전 국제상사 부도이후 ‘건물의 경사진 외곽선 때문에 망했다’ ‘홍콩에서도 경사진 지붕을 가진 건물 주인이 많이 망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선디자인 건물 기피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무역센터나 LG그룹 본사건물처럼 ‘쌍둥이 빌딩’은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 강력한 인상을 주는 좋은 건축물.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피대상이다.

건축주들이 ‘똑같은 건물이 두개 있으면 막강한 권력자도 두 명이 나와 분란을 일으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터부를 깨는 ‘용감한’ 건축주들도 늘고 있다.

일부 빌딩은 4층을 4층이라고 제대로 표기하고 있다. 또 서향(西向)건물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전망을 더욱 중요시해 서향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범건축사무소 권보순(權保順)과장의 설명이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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