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販禁]「6·25觀」싸고 保革논쟁 촉발

  • 입력 1998년 11월 12일 19시 30분


지난달 19일 월간조선 11월호가 발매되자마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崔章集)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 기사는 민감한 반응과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는 최교수가 93년과 96년 발표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과 ‘한국 민주주의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개전초기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은 한반도 전체의 초토화를 면치못할 가공할 사태 △6·25전쟁 최대의 피해자는 북한 민중 등 6·25를 평가함에 있어 대한민국에는 불리하게, 북한에는 유리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최교수의 해석이 타당하다면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을 다시 써야한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

이같은 내용의 기사에 대해 가장 먼저 촉각을 곤두세운 곳은 정치권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안상수(安商守)대변인은 19일 성명을 내고 “최교수의 논리는 기존 한국 현대사의 해석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며 그가 현정권의 핵심 정책 브레인이란 점에서 현정권의 이데올로기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자민련도 20일 당내 안보특위를 열고 최교수의 기획위원장 사퇴문제를 제기했다.

문제가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색깔논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최교수도 20일 12쪽에 달하는 장문의 반박문을 냈다. 그는 ‘역사적’이란 표현은 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전쟁 발발이 한국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며 바로 뒷문장에서 ‘그같은 역사적 결단이 오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북한 민중이 최대의 희생자였다는 표현은 남한 민중의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내의 공방이 주요 일간지를 통해 보도되자 급기야 사태는 ‘보혁논쟁’으로 번져갔다.

한국정치학회(회장 백영철·白榮哲)는 같은달 24일 문제의 기사가 ‘매카시즘적인 마녀사냥’이라며 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최교수도 이날 월간조선의 판매 배포 금지 가처분신청과 5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보수진영의 최교수 비난성명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 자유민주민족회의(대표 이철승·李哲承)는 “6·25를 민족해방운동으로 규정하는 등 김일성 사관의 전도사 역할에 충실한 최교수는 이 나라의 사상적 혼란을 조성한 장본인이며 정부는 최교수를 대통령 직속기구의 책임자 자리에서 즉각 추방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진보적 시민단체와 보수우익단체들의 성명공방은 꼬리를 이었다.

국정감사에서도 최교수의 사상검증 문제가 주요쟁점이 됐다. 3일 문화관광위 국감에서는 국민회의 신기남(辛基南)의원과 한나라당 강용식(康容植)의원이 서로 최교수와 월간조선을 옹호하며 설전을 벌였다.

김종필(金鍾泌)총리의 9일 발언도 화제가 됐다. 김총리는 이날 “북한민중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라는 말은 직접 참전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발상”이라며 “대통령 주변에 분홍색을 띤 인사들이 문제”라고 말해 파문을 던졌다. 김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최교수의 내각제 반대론에 대한 김총리의 교묘한 ‘견제구’라는 분석도 대두됐다.

그러나 법원은 11일 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배포 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공인에 대한 검증은 언론의 자유와 권리지만 사실성과 공정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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