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의 신화…」]佛 「고속철」우여곡절 끝 따내

  • 입력 1998년 9월 21일 06시 44분


경부고속철도 입찰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됐던 로비설의 의혹을 담은 책 ‘로비스트의 신화가 된 여자’(문예당)가 출간돼 또한번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일부 관계자들의 실명(實名)이 그대로 인용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자인 강귀희씨는 숙명여대 재학중 도불(渡佛)해 파리에서 한국식당 ‘르 서울’을 운영하며 미테랑 전대통령 등 프랑스 유명인사들과 교분을 맺었고 그 인연으로 알스톰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국내외 로비와 관련된 부분.

▼고속철도 도입의 시작〓박정희대통령 시절에 TGV에 대한 서류 일체가 유양수 당시 교통부장관에게 제출된 이후부터 강씨는 고속철도사업을 염두에 두고 철도청을 통해 연결을 하려고 했었다.

▼전두환 전대통령 관련〓1983년 전두환 대통령이 유럽7개국 순방 길에 올라 프랑스 파리에 들렀을 때 강씨는 이순자여사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의 효과는 그 다음날 나타났다. 교민초청 리셉션에서 전대통령은 “이 자리에 정말 훌륭한 모녀가 와 계십니다. 어려운 나라 상황을 걱정해 일찍이 해외 개척을 시작한…”하면서 강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뒤 당시 S교통부장관이 찾아왔다.

▼노태우 전대통령 관련〓1987년 12월 민정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씨는 대선공약으로 고속철도 사업 추진을 내걸었다. 그러나 3차입찰 후 청와대에서 이미 독일의 ICE로 마음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전 국무장관 슐츠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노대통령의 방미때뿐만 아니라 최대 치적이라 할 수 있는 대러시아 관계 등 북방외교는 슐츠에게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제1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슐츠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슐츠가 미국 벡텔사의 회장이었고 벡텔사는 독일의 ICE로 고속철도가 선정되면 고속철도 기반시설 공사의 기본 설계엔지니어링을 따내려는 강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 슐츠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던 K경제수석은 공개적으로는 TGV가 좋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독일의 ICE측을 도와줬고 북방외교에 성가를 올리고 있던 P장관도 K경제수석의 뒤에 있었다. 또 K경제수석은 고속철도단의 K단장 뒤에 있었다. 나중 K경제수석은 영종도 신공항 공사를 벡텔에 수의계약으로 맡기려다 들통이 나 취소되기도 했다.

강씨는 경북여고 후배인 김옥숙여사를 찾아갔다. 강씨는 김씨의 동생(금진호씨 부인)과 청와대에서 함께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김씨는 “K경제수석도 TGV가 아주 좋다고 보고를 하는 것 같습디다. 결국은 순리대로 판가름이 나겠지요. 그런데 언니, 우리는 너무 돈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이 일이 성사되면 에이전트 비용 5% 중에서 3%, 즉 4백억원 정도의 정치자금을 마련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김씨를 찾아간 게 헛되지 않았는지 TGV가 최악으로 몰린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된 4차 입찰에서도 결정이 나지않고 또다시 유보됐다.

▼김영삼 전대통령 관련〓우여곡절 끝에 결정은 문민정부로 넘어갔다. 강씨는 김대통령의 사돈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이 분은 “TGV 좋지!”하면서도 말끝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독일측과 선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4차입찰에서 최악의 궁지에 몰렸던 알스톰사는 5차 입찰을 앞두고 김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안했다. 그 연결고리를 맡은 사람은 C목사였다.

또다른 한편으로 북방외교를 맡았던 P씨가 측근을 통해 알스톰사에 에이전트 제의를 했다. P씨가 측근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내면적으로는 P씨가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제의한 사실을 알스톰사는 강씨에게 의논했다.

강씨는 프랑스 그림 한 점을 사서 H대사를 찾아갔다. 대규모 국책사업인만큼 공식적인 통로로 의견이 오가야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H대사는 TGV 이야기가 나오자 알스톰사에 대해 듣기 민망할 정도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독일의 실질적인 에이전트인 D그룹의 K회장이 이미 다녀간 후였다.

▼사업비 증가 원인〓TGV의 기술이전을 받기로 한 한국측 컨소시엄사는 H사와 또다른 H, 그리고 D사였는데 주력사가 되기위해 혈안이 되어 서로 물어뜯고 있었다. 총 46편(편당 20량)중 12편만 알스톰사측으로부터 완제품으로 수입하고 나머지 34편은 한국측에서 기술제휴로 생산하게 되었다. 즉 9백20량의 열차 중 6백80량을 한국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이권이 달려있었다. 서로 주력사가 되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천장의 팬터글라스는 D사, 차체는 H사, 동력은 또 다른 H사가 나누어 협력생산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서로 내것네것할 것 없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 세 회사간의 갈등은 심했고 시험 구간을 만들 때 그 갈등이 이미 표면에 드러나 있었다.

H사에서 시험구간을 이미 건설하고 있을 때 D사에서는 H사에서 만든 시험구간을 쓸 수 없다며 독자적으로 다른 시험구간을 만들었다. 어이없는 옥상옥(屋上屋)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쓸데없는 비용이 추가되어 세금 부담만 늘어난 셈이었다.

〈전승훈·이승헌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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