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詩」출간50주년,되돌아보는 시인 윤동주

  • 입력 1998년 8월 16일 20시 10분


식민지 조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1917∼45). 올해는 그가 세상에 남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초간본이 출간된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뜻깊은 50주기를 맞아 ‘윤동주 재조명’작업이 활발하다. 88년 ‘윤동주 평전’을 펴냈던 작가 송우혜는 10년만에 세계사에서 개정판을 펴내며 윤동주 시 보존의 공로자 강처중을 집중소개했다.

강처중(姜處重·1916∼?)은 연희전문시절 윤동주의 기숙사 룸메이트이며 50년대 좌익활동혐의로 총살 당한 인물.

강처중은 윤동주가 직접 묶었던 필사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41년)에 포함되지 않은 대표작들을 보관해 유족에게 전했고 48년 초간본 출판의 산파역을 했지만 그간 좌익이라는 이유로 시집에서는 ‘윤동주가 동경에서 편지를 보냈던 서울의 한 벗’정도로 익명화 되고 말았다.

42년 일본유학길에 오르며 윤동주가 강처중에게 맡긴 시는 ‘참회록’ ‘팔복(八福)’ ‘간(肝)’ ‘위로’ 등. 또 유학시절 윤동주의 시작(詩作)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쉽게 씌워진 시’ 등 다섯편의 작품은 모두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 속에 수록된 것이다.

강처중은 48년 윤동주의 연전후배 고 정병욱교수가 보관했던 필사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에 실린 19편과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시고들에서 추린 시 31편으로 정음사에서 초간본을 발간하며 생전에 윤동주가 존경했던 정지용에게서 서문을 받아냈고 직접 발문을 썼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정지용이 납북되고 강처중마저 좌익으로 총살당해 이들의 글은 ‘하늘과…’의 중간본 이후 아예 삭제돼 버렸다.

한편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교수(성균관대)와 일본 와세다대 오오무라 마스오교수등은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는 시인의 자필원고와 애장도서 등에 남긴 메모등을 당시 모습 그대로 총정리한 ‘사진판 윤동주 육필 시고 전집’(민음사)을 발간한다. 전집에 수록된 육필시고는 두권의 습작집과 산문집등에 실린 총 1백50편.

특히 이번 전집에서는 그간 유족들이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채 보관해온 ‘가슴2’ ‘창구멍’ ‘빗뒤’ 등 8편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작품들은 생전의 시인이 ‘X’표로 마음에 흡족치 않음을 표시해놓아 유족들이 발표하지 않아온 작품들.

사진을 통해 생생히 드러나는 퇴고 흔적과 메모는 윤동주 시의 ‘행간’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일본 유학 직전에 쓴 ‘참회록’의 여백에는 ‘詩란?不知道(알 수 없다)’ ‘문학’ ‘생활’ ‘생존’ ‘渡航證明(도항증명)’ ‘悲哀’ 등의 낙서가 빽빽하다. 창씨개명을 끝까지 미루었던 윤동주가 유학에 필요한 증명서들을 얻기 위해 ‘平沼東柱’로 이름을 바꾼 뒤의 고뇌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생전에 윤동주가 애송했던 백석 정지용 김영랑의 시에 덧붙인 메모는 그들과 윤동주의 문학적 상관관계를 가늠케 한다. 특히 백석의 시는 직접 베껴쓴 뒤 표지까지 만들어 붙일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사진판 윤동주 육필 시고전집’은 9월 발간 예정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