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뉴욕재공연]숨소리마저 멈춘 브로드웨이

입력 1998-08-02 19:44수정 2009-09-25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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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립박수를 치는 2천여 관객은 막이 내린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백색과 흑색 황색, 미국인과 한국인…. 상기된 표정으로 환호하는 그들을 피부색이나 국적으로 나누는 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난달 31일 밤10시35분(현지시각) 미국 뉴욕 링컨센터 뉴욕스테이트극장. 97년에 이어 또다시 뉴욕 무대를 두드린 한국의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제작 에이콤·연출 윤호진)의 개막공연은 이렇듯 객석을 하나로 묶어냈다.

올해 ‘명성황후’ 미국공연은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해 동아일보와 공동주최하는 뜻깊은 행사.

이날 공연은 23일까지 계속되는 ‘98 명성황후’ 뉴욕 대장정의 첫날.단 열흘로 끝난 지난해 뉴욕무대 데뷔공연을 교두보로 삼아 ‘명성황후,브로드웨이 흥행 원년’으로 목표를 세운 무대다.

제작진의 노력과 의지는 객석의 감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1년간 갈고 다듬어 새로 삽입한 1막 무과 시험장면은 한국 고유의 남성적 아름다움을 본때있게 보여줬다.

죽는 순간까지 황후를 온몸으로 보호하는 홍계훈장군(김민수 분)등 20여명의 남성무사들이 택견과 전통검술 동작을 변형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빠른 템포의 합창을 쏟아내자 객석에서는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휘파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연의 절정은 역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2막 마지막 부분. 황후(이태원)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듯 애절한 아리아를 부르는 대목부터 숨소리조차 잦아들기 시작했던 객석. 끝내 황후가 일본군의 칼에 베인 뒤 세자(우정훈)가 “어린 나이, 힘이 없어 어머니를 지키지 못하고…”라고 울먹이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뉴저지 한국교회협의회 부회장 이희문목사는 “이 위기의 시대에 내가 누구인가, 한국이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가슴 벅차게 알려준 작품이다. IMF체제 이후 미국사회에서 땅에 떨어진 한국의 위상이 일거에 올라간 것 같아 속이 후련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개막에도 ‘명성황후’의 사령탑인 연출자 윤호진(에이콤 대표)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올해 그의 목표는 ‘뉴욕관객 5만명 동원’. 2천8백석의 뉴욕스테이트극장이 29회 공연 전회 매진돼도 관객수는 6만1천2백명이니 그의 야심은 당차다. 그러나 그는 올해의 목표가 야심이 아닌 한국뮤지컬의 자존심과 생존력에 관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명성황후’의 공식오프닝은 4일. 뉴욕의 저명인사와 상어떼같은 비평가들이 이날 대거 ‘명성황후’를 검증하기 위해 온다. 브로드웨이는 ‘명성황후’를 선택할 것인가.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뉴욕〓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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