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권총성적」이단아들,IMF시대 개성-도전으로 뜬다

  • 입력 1998년 6월 18일 19시 58분


“쌍권총’을 풀고 ‘민간인’이 되고 싶다며 푸념하던 친구였는데….”

C광고기획사 마케팅담당 김정현대리(33). 며칠전 대학동창회에 갔다 온 뒤 기분이 착잡하다.서클활동에 열중해 F학점을 밥먹듯 받던 동기 전모씨를 만난 일 때문. ‘밥벌이나 제대로 할까’했던 그가 웬걸.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을 창업해 ‘잘 나간다’는 평판.명함을 건네던 밝은 얼굴. “총장 표창을 받을만큼 높은 학점으로 인기직장에 입사한 ‘나’. 다가오는 ‘차가운 여름’을 견뎌낼 수 있을까….”

‘I’m F시대’이기 때문일까. 학창시절 우등생과 열등생의 위상에도 지각변동이 더욱 심하게 일고 있다. F학점을 ‘불사’하며 자신만의 삶에 열중했던 ‘F학점의 천재들’이 뜨거운 도전의식을 무기로 ‘난세’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우자동차 공장관리팀의 박창준대리(31). 95년 대우그룹의 일명 ‘운동권특채’로 입사해 남보다 1년이상 빨리 대리로 승진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시절 성적표는 ‘무기고’였다. 학사경고 2회의 전력.

“80년대 후반과 IMF시대는 ‘고난의 시기’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대적 당위성,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 1백여 ‘F학점 동기생’은 요즘같은 극한상황이야말로 우리가 능력을 발휘할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서류전형에서 ‘대학이름’과 학점을 우선고려하는 대기업보다 ‘프리랜서 분야’에서 이들의 움직임은 도드라진다. 명필름 이은대표(37). ‘접속’‘조용한 가족’으로 연속흥행에 성공한 영화제작자.

중앙대 연극영화과시절 매 학기 F학점 2,3개는 기본. “다행히 영화업계에서 ‘학교식 모범생’은 의미가 없어요. 공격적 창의력과 자기 성실성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CF감독 박명천씨(29). 아줌마 탤런트 전원주를 스타덤에 올린 ‘국제전화 002’ TV광고의 제작자다. 최근 광고제작 의뢰건수가 3배 정도 뛰었다.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출신.

“교양과목 1,2개는 예사로 ‘빵꾸’를 냈습니다. 시험 때 교수 얼굴을 처음 본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영상 관련 과목 숙제를 하기 위해 ‘날밤’을 새웠고 만화서클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등 치열한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PC칼럼니스트인 곽동수씨(35). ‘안녕하세요, 아래아한글’시리즈와 ‘곽동수의 소호창업’의 저자. 숭실대 경제학과 출신. “컴퓨터업계 사람 중 80%는 비전공자입니다. 대부분 전공과목에서는 ‘끔찍한’ 학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뭔가에 ‘미칠’수 있었기에 ‘서바이벌 게임’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죠.”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비교학과 조성택교수(40·인도철학). 대학측이 ‘철학계에 떠오르는 별’로 칭찬하는 그는 고려대 영문과 1학년 때 ‘D하나에 올 F, 평점 0.07’이라는 기록적 학점을 받았다.

버클리대박사 출신인 그는 96년 가을학기 뉴욕주립대 학생들로부터 2천여 교수 중 ‘최우수강의 교수’로 선정됐다. 그것도 이 대학 역사상 최고의 ‘학점’으로.

“저학년 때 우수하던 한국유학생과 자기 관심사에만 매달리던 미국학생의 성적은 거의 예외없이 3학년 2학기에 역전됩니다. 그 이후 재역전은 거의 불가능한듯 보입니다. 입학 초 ‘인간이 될까 싶은’ 미국 대학생들이 결국 앞서는 대학과 사회. 우리도 뭔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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